[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95] 미국의 한국인 수석 무용수 서희

지난주 금요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최초의 한국인 수석 무용수 서희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1841년 초연한 낭만 발레의 대표작 ‘지젤’. 그날 서희의 퍼포먼스는 힘 있고도 아름다웠다. 큰 무대가 조금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늘고 긴 팔다리로 만드는 우아한 동작은 여성스러움과 서정미의 극치였다. “천천히 등장하는 서두르지 않는 순수함”이라는 뉴욕타임스 표현 그대로다. 흩어지지 않는 품새와 유연한 움직임, 섬세한 표현력, 그리고 가끔 보이는 신명과 여유는 관객을 또 다른 ‘지젤’의 세계로 안내했다. 20년간 함께 공연한 친구이자 파트너 코리 스턴스(Cory Stearns)와 맞춘 호흡이 언제나 그랬듯 완벽했다. 수십 년에 걸친 훈련과 교감으로만 가능한 경지다.

오래전 서희는 나의 멘토이자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하워드 블래닝 교수를 만나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다. 발레 공연에서 숙제로 남아있는 한 동작에 감정을 최대한 이입하기 위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해야 했고, 그걸 묻고 또 물으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수년에 걸친 이런 노력이 오늘날 정평이 난 서희의 표현력을 완성한 바탕일 것이다.

서희는 커튼콜에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성취의 모습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땀을 뻘뻘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대 위로 전직, 현직 단장이 올라와 축하해 줬다. 동료 질리언 머피(Gillian Murphy)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면서 서희는 명실공히 넘버원 수석으로 발레단을 이끌 최고참이 되었다. 본인의 활동과 더불어 서희는 한국의 발레 꿈나무들을 위해서 매년 YAGP코리아와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한다. 10년 이상 계속 노력한 결과,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는 ‘서희 키드’만 수십 명이다. 정상에서 자신의 공연만 생각해도 바쁠 시기에 후학을 배려하는 행보가 발레의 우아함만큼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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