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간염·지방간이 부른 '이 질환'... "침묵 속에 간이 굳어간다"
간은 우리 몸에서 해독, 영양소 대사, 면역 조절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신경세포가 거의 없어 조직이 상당히 손상될 때까지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기능의 80% 이상이 저하된 후에야 이상을 느끼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문제를 인지했을 땐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간경변증'이다. 간에 지속적인 염증 반응이 일어나면서 조직이 점차 굳고 간 전체의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으로, 뚜렷한 증상이 없는 초기에는 방치되기 쉽다.
소화기내과 양현 교수(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는 "간경변증이 진행되면 복수, 간성 뇌증, 간신증후근, 간암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위험 요인이 있을 경우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조기에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의 설명을 통해 간경변증의 원인부터 증상 및 치료 전략까지 자세히 짚어본다.

간을 무너뜨리는 만성 염증...B형 간염·지방간 등 원인
간경변증(Liver cirrhosis)은 간세포가 반복적으로 손상되고 염증이 지속되면서, 간 조직이 점차 섬유화되고 재생결절이 형성되는 만성 간 질환이다.
섬유화는 손상된 간세포 자리에 딱딱한 흉터조직이 생기는 현상으로, 간 기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섬유화된 조직은 간세포처럼 대사·해독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간 내 혈관 구조를 망가뜨려 세포 손상을 일으킨다. 재생결절은 남은 간세포들이 손상을 보완하기 위해 무질서하게 뭉쳐 자라면서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정상 구조와 기능을 방해하며 간 전체의 형태를 울퉁불퉁하게 변형시킨다.
국내 간경변증의 주요 원인은 '만성 B형 감염(HBV)'과 '만성 C형(HCV) 간염'이다. 바이러스가 간세포에 침투해 증식하거나, 감염된 간세포를 면역세포가 공격하면서 간세포 손상이 발생한다.
특히 만성 B형·C형 간염은 일부 간세포의 유전자(DNA)를 변형시켜 간암 발생 위험도 높인다. 손상된 간세포가 계속해서 재생과 복제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쌓이고, 이로 인해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과도한 음주와 대사이상지방간 질환(NAFLD)도 간경변증의 원인이 된다. 양 교수는 "알코올은 간에 지방이 축적되도록 하고,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을 증가시켜 간염과 섬유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라면서 "비만, 인슐린 저항성, 당뇨병 같은 대사 이상 역시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유도해 만성 간 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초기 증상 자각 어려워...합병증 동반되면 생존율 '뚝'
간경변증은 초기에는 대부분 특징적인 자각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보통 간이 굳어지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피로감, 식욕부진, 구역질과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증상만으로 간 질환을 의심하기 어려워 놓치기 쉽다.
이후 병이 점차 진행되면 다양한 증상이 발생한다. 양현 교수는 "황달, 피부에 나타나는 거미혈관종, 손바닥의 홍반, 여성형 유방, 성기능 장애, 월경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면서 "상태가 더욱 악화되면 복수, 다리 부종, 위·식도 정맥류 출혈, 간성뇌증, 간신증후군 등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합병증은 간으로 유입되는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문맥압이 상승할 때 발생하기 쉽다. 문맥압은 장과 비장을 지나 간으로 혈액을 운반하는 혈관 내의 압력을 말한다. 이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복수나 정맥류 출혈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복수는 가장 흔한 합병증으로, 환자의 42%에서 80%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정맥류 출혈 역시 간경변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위험한 합병증으로, 최근 치료법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12~22%에 달한다.
또 다른 합병증으로는 자발성 세균성 복막염이 있다. 양 교수는 "복수가 찬 환자에서 특별한 감염 경로 없이 복막에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환자의 10~30%에서 발생하며, 2년 생존율이 약 20%로 낮다"라고 설명했다.
간신증후군은 간 기능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신장 기능까지 급격히 떨어지는 합병증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약 1개월로 예후가 매우 불량하다.
양 교수는 "이러한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를 '비대상성 간경변증'이라 하는데, 이 단계에 접어든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4~35%에 불과하다"라고 전했다.

원인 차단과 합병증 대응이 관건..."간암 고위험군은 정기 검진 필수"
간경변증 치료의 핵심은 원인 질환의 조절과 합병증 관리에 있다. 간이 한번 섬유화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어렵지만, 조기에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진행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
우선 간 손상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차단하거나 줄여야 한다. B형 간염의 경우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 간세포 손상과 염증을 줄이고, 이를 통해 간경변증과 간암으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보통 경구 항바이러스제(테노포비어, 엔테카비르 등)를 사용하며, 복용은 수년간 장기적으로 이어지거나 경우에 따라 평생 지속될 수도 있다.
C형 간염은 비교적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DAA)를 8~12주간 복용하면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다. 완치율은 95% 이상에 이른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반드시 금주가 필요하며, 대사이상지방간질환은 체중 감량, 꾸준한 운동, 식습관 개선이 필요하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 심장대사 위험 인자에 대한 약물 치료도 병행돼야 한다.
질환이 진행되어 복수, 정맥류 출혈, 간성 뇌증 등 합병증이 발생한 경우에는 각각에 맞는 약물 치료나 내시경 치료가 시행된다. 중증 간경변증의 경우 간 기능 회복이 불가능해 간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 될 수 있는데, 공여자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정기 검진도 매우 중요하다. 앙현 교수는 "간경변증 환자는 간암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6개월마다 간 초음파와 혈청 알파태아단백(AFP) 검사를 포함한 정기적인 간암 조기검진이 필수적으로 권장된다"라고 조언했다.
간경변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간을 손상시키는 요인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수칙은 B형 간염 예방접종이다. 아직 항체가 없다면 병원을 찾아 항체 여부를 확인하고, 예방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이진경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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