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상수도만 있고 하수도는 없다... 말기 돌봄 태부족" [유예된 죽음]

손영하 2025. 7. 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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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존엄한 작별이란
[인터뷰]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
"'누구나 다 죽는다'는 간단한 명제 외면"
"민간병원 호스피스 외면, 정치권도 관심 無"
"연명의료결정제, 환자 각서로 활용" 비판도
편집자주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국 의료 현장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실상과 한계,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가 6월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용식 PD, 박채원 PD

가정의학 전문의이자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인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는 한때 재난 지역을 누비는 긴급구호 전문가를 꿈꿨다.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장을 원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곳을 굳이 찾지 않는다. 대한민국 병원. '주삿바늘을 쉴 새 없이 찌르고, 종일 시끄럽고, 밝은 불빛으로 잠들 수도 없는 곳'. 그곳에서 환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고 있었다.

박 교수는 지난 6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치료를 위한 병원을 '상수도'에, 생애말기 돌봄과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공간을 '하수도'에 빗대며 "끝없이 상수도는 많이 만들면서 하수도는 만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젊음'의 가치가 '노화'나 '죽음'을 압도하다 보니, 계속 늘어나는 대형병원에 비해 호스피스 등 생애말기 돌봄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사가 선호하는 임종 장소'로 호스피스 병동을 꼽았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받고 항생제 맞고 목숨은 연명하면 겪지 않아야 될 합병증을 더 많이 겪게 된다. 그 자체가 고통"이라며 "의료진은 그걸 지켜보면서 치료를 포기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는 경험적 지혜를 쌓게 된다"고 했다. '집'이 아닌 '호스피스'인 이유는 "혹시라도 모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의료기관을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가 6월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용식 PD, 박채원 PD

문제는 호스피스를 누구나 이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의료기관의 대부분인 민간병원에선 휴머니즘보다 경영이 더 중요하다"라며 "국가가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수가를 제한하면서 민간병원들은 호스피스 병동을 기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호스피스 기관 부족에는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더 많은 의료 서비스들을 편하게 이용하게 할지만 생각한다"며 "'누구나 다 치료받다 죽는다'는 간단한 명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의 배경에 노년과 죽음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무관심, 심지어 공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선 젊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가 됐다. 반대로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공포가 있다"며 "늙어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존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 결과 "돌봄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가장 쉬운 '시설 격리'가 이뤄지고, 국민들은 결국 '안락사'를 바라게 됐다"고 진단했다.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가 6월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용식 PD, 박채원 PD

다음은 일문일답.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7년 동안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사실 죽음은 법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7년 차를 맞았지만, 법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마지막까지 치료받고자 하는 욕망과, 무의미한 치료라는 의사의 결정이 상충한다. 의사가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얘기해도 환자는 계속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취지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가게 된다. 문화로 해결해야 할 것인데, 법이 나와 강제하는 경향이 있어 갈등과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죽음에 존엄함을 지켜주겠다는 취지는 사라졌다. 오히려 병원에서는 의료적 자원 낭비를 막는 용도로, 혹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환자의 각서로 활용한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자기 결정이 아니다. 죽음의 장소가 병원이 아니어야, 이 본래 취지로 활용될 수 있다."

-환자 가족들이 실제로 결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 충분한 시간을 통해서 삶을 함께해 왔을 때는 자연스럽게 '이제는 멈춰야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 그런데 사회가 변하면서 이제 개별화 사회가 됐다. 독립한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살지 않고, 자주 만나는 경우도 없다.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거나 위독해졌을 때 가족들이 어떤 결정을 해야 되는데, 심리적으로 압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숙고할 시간을 더 요구하게 되는데 그 자체가 연명의료로 이어지게 된다. 또 환자가 사전에 자기 결정권을 내세워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에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공유되지 않거나 맥락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이것을 번복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의료진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연명의료를 시행할지 말지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야 하는데, 법은 '임종과정의 환자'로 좁혀 정해놨다. 문제는 환자의 임종과정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칼로 무 자르듯이 수치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걸 놓고도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고, 의료진은 자기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도 임종기 판단 기준이 있다면.

"딱 잘라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사에게는 자기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가 온다. 그때는 사실 의료진이 마음의 부담이 크겠지만 용기를 내야 한다. 또 가족들을 설득하고, 의사소통해서 환자가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의료적 선택지를 과감히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만 늘 거기에는 법적 소송에 대한 부담이 함께한다."

-연명의료 중단은 곧 '죽음 유도'라는 인식도 있다.

"우리 사회, 가정 대부분은 치열하게 경쟁해서 성공하기 위한 문화만 공유한다. 삶의 어느 과정에서 내려놓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문화는 전혀 공유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까지 목숨에 연연하는 것 역시 그 사람의 가치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다만 사회적으로 꼭 알아야 할 것은 연명의료를 시행하는 의사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 트라우마다. 의사는 주치의라는 이유로 환자가 마지막 순간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양심과 윤리에 위배되는 의료행위를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 않아야 될 의료행위를 강요받는 것도 의료진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가 6월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용식 PD, 박채원 PD

-의료진이 선호하는 임종 장소는.

"병원에서 수술받고 항생제 투여되고 하면 목숨은 연명하지만 겪지 않아야 될 합병증을 더 많이 겪게 된다. 그 자체가 고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많은 의료진은 그걸 지켜보게 돼서 어느 순간에는 치료를 포기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겠다는 경험적 지혜가 쌓이게 된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모를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을 떠날 수 없으니 호스피스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호스피스를 원해도 호스피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형병원들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스피스에 장벽이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의료기관은 사실 대부분이 민간기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간병원들은 대형화 경향이 있다. 규모의 경쟁을 한다. 그때부터 휴머니즘보다 경영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같은 경우 국가에서 수가를 제한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수가를 신청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금액 안에서만 하도록 정해뒀다. 그러다 보니 민간병원들은 호스피스 병동을 기피하게 된다. 정치인들도 호스피스 기관 부족에는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더 많은 의료 서비스들을 편하게 이용하게 할지만 생각한다. 그래서 수도권에 대형병원을 증설하는 것만 생각한다. ‘누구나 다 치료받다 죽는다’는 간단한 명제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끝없이 상수도를 많이 만들면서 하수도를 만들지 않는 것과 똑같다".

-투자의 문제인가.

"사회 가치의 문제다. 사회적 예산, 우선순위에서 이 죽음의 문제를 어디에 둘 것인가. 젊을 때는 내 삶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갖지만, 나이가 들수록 돌봄, 의료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특히 돌봄 문제에 신경 쓰지 않다 보니 가장 쉬운 '시설로 격리'가 이뤄지고, 국민들은 안락사를 원하게 됐다."

-안락사,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일종의 엑소더스다. 컴퓨터를 고치려 하는데 고쳐지지 않으면 가장 쉬운 방법은 셧다운(시스템 종료)이다. 국민들이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을 때 대안이 없다. 존엄한 죽음이 문화로도, 사회 시스템으로도, 의료 시스템으로도 대안이 없다. 죽음의 순간까지 나를 존엄하게 지키면서 행복을 누리겠다는 가능성이 불투명하니 빨리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일종의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죽음 이전에 노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지금 대한민국에선 젊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의사가 필수의료나 호스피스 의료보다는 항노화 클리닉, 미용 치료 쪽으로 많이 가게 됐다. 그것들에 열광하는 것만큼 반대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공포가 있다는 얘기다. 늙어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존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어떻게 바꿀 수 있나.

"각자가 깨달아야 한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생애 전 주기를 미리 생각하고 어떤 삶의 궤적을 살지를 일찍부터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어령 선생은 집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말기 암환자로서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일찍이 병원에 가지 않았고, '내가 죽음을 맞이할 공간은 정체성이 밴 서재'라고 말씀하셨다."

■'유예된 죽음' 특별취재팀
팀장= 김혜영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손영하 · 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백혜진 · 정혜원 인턴기자
사진= 정다빈 · 강예진 기자
영상= 박고은 · 이수연 · 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김서정 인턴PD
인터랙티브= 박인혜 기획자, 남유진 개발자, 이정화 디자이너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갈피를 잃었다
    1. • 심장이 멈춘 남편은, 계속 숨을 쉬었다...연명의료 죽음의 풍경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02070004504)
    2. • "안 받겠다" 해도 결국 절반은 연명의료 받다 숨진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714550003896)
    3. • '연명의료 거부' 300만 시대... 70대 여성 31%가 쓴 이 문서는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18510004794)
    4. • "나는 오늘 아빠의 죽음을 결정했다" [인터랙티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911550002745)
  2. ② 마음이 흩어졌다
    1. • "연명의료 싫다" "끝까지 받겠다"...내 결정을 가족이, 의사가 막아섰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913350000358)
    2. • 소외된 외국인과 무연고자...이들은 연명의료를 끝까지 받아야 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22360004659)
    3. • "임종 판단 못해" 그 의사가 벌벌 떤 이유... 식물인간은 대책도 없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23540003696)
    4. • "죽음 너무 괴로워 조력사 논의까지.. 대리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22180002265)
    5. • '김 할머니' 떠난 지 15년 "죽음은 여전히 공장화... 가정돌봄 절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21090000993)
  3. ③ 빈틈에서 헤맸다
    1. • '심정지 1시간' 아빠, 간호사 자매는 연명의료를 선택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0220003322)
    2. • 연명의료 중단 결정, 그 후 대책이 없다...방치될까 두려운 환자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423060002777)
    3. • "편히 가려고 왔는데"...60일마다 '병원 찾아 삼만리' 떠나는 까닭은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510290001551)
  4. ④ 자책에 빠졌다
    1. • 늘 취해 있던 아빠의 죽음에 서명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807530002739)
    2. • 2분 고민하고 아빠는 지옥의 2주를 보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809330004025)
    3. • "시한폭탄 안은 기분" "비정규직 1명이 전체를"...공용윤리위 들여다봤더니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511250000896)
  5. ⑤ 존엄한 작별이란
    1. • "죽는 약 구해 달라"던 아빠와 마지막 소풍을 떠났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523240001776)
    2. • "'스위스'가 답은 아니다... 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해야"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710340000303)
    3. • 안락사로 동생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 결코 평화롭지 않아"[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19190004806)
    4. • "잘 죽고 싶으면 이건 꼭 준비" ①원치 않는 치료 ②유언 ③추모 방식…[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18310004886)
    5. • "한국 의료, 상수도만 있고 하수도는 없다...생애말기 돌봄 시설 태부족"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416030005623)
    6. • [영상] 존엄한 마지막은 가능할까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216320004703)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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