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농촌] (1)전북 장수 하동마을의 소박한 일상 담은 ‘행복’


서울 강남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극적인 쾌락을 좇는 삶을 살아온 영수(배우 황정민)는 애인에게 버림받고 간경변까지 걸리게 된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찾아간 한적한 시골 요양원에서 8년째 지내고 있는 은희(배우 임수정)를 만난다. 심각한 폐질환에도 밝고 긍정적인 은희의 배려와 사랑에 마음을 연 영수는 그녀와 함께 요양원을 떠나 시골 농가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두 남녀는 그곳에서 소박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영수는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병세가 호전되자 영수는 은희 곁을 떠나 도시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은희는 병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난다. 뒤늦게 은희의 소식을 전해 들은 영수는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그녀의 마지막을 지킨다. 그리고 은희의 장례 후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재발한 간경변을 치료하기 위해 이제는 은희가 없는 요양원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하동마을의 들판과 밭, 작은 집, 시장, 버스정류장까지. 영화는 이 모든 풍경을 그림처럼 따뜻하고 정감있게 담아냈다. 영수와 은희가 처음 만났던 슈퍼, 자장면을 먹으며 데이트했던 시장, 그리고 두 사람이 아기자기한 사랑을 속삭이던 집까지, 모든 공간은 도시의 번잡함과는 대조되는 느리고 반복적인 농촌의 일상을 보여주며 영화의 감수성을 극대화한다.
하동마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이곳은 영수가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것을 넘어, 마음에 쌓였던 깊은 상처까지 치유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허 감독은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도시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순수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영수와 은희의 내면 변화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장수군은 내륙 깊숙이 자리한 오지 중의 오지로, 외부와 단절된 듯한 청정함과 고요함, 온전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6월의 어느 날, 영화 속 영수가 그랬던 것처럼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전북 장수로 향했다. 도시를 떠나 요양원으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갔던 산서면 동화리의 동화교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다리를 지나는 버스 장면은 영수의 도시 삶과 농촌 삶을 나누는 중요한 기점이기도 하다. 동화교 아래 흐르는 장수천은 금강 지류로, 장수군을 대표하는 하천 중 하나다.
버스에서 영수가 내렸던 원지지마을 버스정류장은 아쉽게도 영화 속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정류장 이름만이 유일하게 영화 속 장면과 일치할 뿐이다. 영수와 은희가 처음 마주쳤던 정류장 맞은편 슈퍼 역시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공간의 아련함은 여전히 느껴지는 듯했다. 하동마을은 영수가 이전의 삶에 없었던 사랑과 행복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마음에 누적된 상처까지 치유하는 곳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 제작진은 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예배당, 들판 등을 그대로 활용해 현실감과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원지지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하동마을은 영수와 은희가 함께 행복을 느꼈던 영화 속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두 남녀가 정겹게 걸었던 돌담길, 밭일을 할 때 뒤편에 우뚝 솟아 있던 장안산, 영수가 옛 연인을 배웅하며 걸었던 길과 그 옆에 자리한 종탑이 있는 작은 예배당까지, 영화 속 크고 작은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영수와 은희가 데이트했던 번암시장은 매달 1이나 6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오일장으로, 하동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두 남녀가 자장면을 먹었던 자매반점은 아쉽게도 휴업 중이었다. 영수가 도시에 있는 친구와 통화했던 공중전화 부스 역시 사라졌지만, 시장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영화 속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는 여전했다.

고랭지 채소와 사과·오미자·한우 등 청정 농축산물이 유명한 이곳은 농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이끌어가며, 농촌 체험과 특산물 브랜드화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장수누리파크, 장안산 자연휴양림, 신기마을, 번암시장, 뜬봉샘 생태관광지 등 주요 관광지를 활용해 방문객에게 농촌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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