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천천히…‘폴레 폴레’ 알아야 케냐 비즈니스 보인다

한겨레 2025. 7. 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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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케냐에서는 ‘폴레 폴레’(천천히 천천히)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알아야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 케냐 체마세에 있는 시장의 모습.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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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서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국적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이 있다. 상대방의 답장이 너무 느리거나 연락 두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 신속함과 효율성,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답답하고 신뢰를 잃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케냐에 정착하고 친한 현지인이 생기면서 이런 현상을 물어보며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케냐인의 태도가 좋지 않다고 여기기 전에, 그들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교육 배경을 이해하며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천천히 천천히’

케냐에는 ‘폴레 폴레’(Pole Pole)라는 스와힐리어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천천히 천천히’라는 뜻으로,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나타낸다. 이는 단순히 일상의 태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비즈니스, 시간 개념,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 삶 전반에 녹아 있는 문화적 가치관이기도 하다. 한시가 급해 상대방에게 서둘러 달라고 요구하면 ‘하쿠나 마타타, 폴레 폴레’(다 괜찮아 잘될 거야, 천천히 해)라는 대답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케냐인의 삶에 왜 이런 마인드가 스며들었을까?

첫째, 케냐인의 ‘간접적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케냐인은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체면을 지키는 것을 중시해 부정적 대답을 직접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불편한 소식을 전해야 할 때는 응답을 미루거나, 침묵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많다. 아무 답을 하지 않는 것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갈등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고 케냐인은 여긴다.

이는 먼 과거부터 이어진 부족 간 갈등을 피함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인 역사적 배경에서도 비롯됐다. 우리나라처럼 신속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여기는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둘째, 시간과 중요도에 대한 인식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서는 일 처리에서 일반적으로 ‘폴리크로닉’(polychronic)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멀티태스킹’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상황에 따른 흐름과 관계 중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원래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본인과 친한 누군가가 뭔가를 부탁하면 그것부터 하고 기존 업무가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회신이 늦거나 약속이 수시로 변경되는 것도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케냐인의 교육환경 탓도 있다. 케냐는 주로 교사 중심의 수직적 수업과 국가시험에 대비한 암기 위주 교육을 진행한다. 비판적 사고나 주체적인 표현과 토론, 문제해결 능력 배양보다는, 지시를 따르고 윗사람을 존중하는 상하관계 중심적 태도를 강조한다.

질문과 반론보다는 침묵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즉답을 피하는 것이 체벌이나 부정적 평가를 피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교실에서 교사가 질문했을 때 학생들이 답을 알면서도 손을 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틀린 답을 말했다가 창피당하거나 교사의 꾸중을 들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사교육 발달하지 못해

이러다보니 자율학습 도구나 사교육이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케냐의 서점에 가면 일반 도서와 영국 옥스퍼드 등을 중심으로 한 교과서 외에 특별한 보충학습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고등교육 교과서는 한 권당 2천~3천실링(약 2만~3만원) 수준인데 평범한 가정집에서는 선뜻 사기 어렵다.

교사 중심의 수직적 수업과 국가시험에 대비한 암기 위주의 교육 탓에 서점에 가면 특별한 보충학습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쇼핑몰 내 도서 및 학용품 판매점. 고운정 제공

2019년 마지막으로 실시된 케냐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구 약 5200만 명 중 절반가량(49.8%)은 초등교육이 최종 학력인 것으로 파악됐다. 중등교육 이수율은 24.5%고, 국민의 10% 정도만 고등교육 이상을 수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고등교육을 받기 전에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면, 성인이 돼서도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여학생은 조혼하는 경우도 많아 교육 격차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케냐와의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고, 좀더 여유를 가지며 조급해하지 않는 자세다. 케냐인은 ‘친밀한 관계 구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중국의 ‘관시’(關系) 문화와 일견 비슷한 부분이 있다. 관계 형성 초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진전이 느릴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의외로 강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케냐인들은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주말이나 공휴일에 만나는 것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다만 업무 관련 대화는 지양해야 한다. 순수하게 ‘당신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라는 태도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우리식 속도와 결과 중심으로만 접근하면 관계가 단절될 수 있지만, 상대의 속도에 맞춰 여유 있게 소통한다면 돈독한 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필자의 경험 중, 현지 정부 기관과 공공조달 관련 협업을 추진하던 우리 기업이 입찰 일정 변경과 더불어 사전입찰 회의의 연기 사실을 미리 전달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케냐까지 출장 와 대기하던 상황에서 당일에야 이런 통보를 받은 기업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 갈등이 깊어질 수 있었지만 업체 쪽에서 상황을 이해해 다행히 원만하게 마무리됐다.

케냐 쪽 담당자와 별도 식사 일정을 잡아 물어보니, ‘의도적인 결례’가 아니라, 본인은 변동사항을 공유하기 전에 상사 보고와 내부 조율을 마치고 나서 이야기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미안해하며 설명했다. 당시 케냐 쪽 담당자는 현재 꽤 높은 직위로 승진해 ‘프렌들리한 한국 사람에게 감사하다’며 우리 기업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범국민적 교육수준과 환경개선을 통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케냐의 정책 흐름을 활용해, 우리에게 더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케냐 정부의 교육 부문 지출은 2023년 43억달러에서 2024년 6월 말 기준 53억달러로 증가했다. 현행 교육과정인 ‘역량 기반 과정’(CBC) 도입에 따른 교육시설 추가 건설과 현대화, 학생·교원들의 국제 표준 및 사고 함양 등 정책들을 펼치기 위함이다. 정부 차원에서 교육 체질 개선을 모색하는 데 적극적이다. 이에 교육 정보기술, 더 나은 교육과정 개발과 적용, 교원들의 숙련도 제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기회가 열리고 있다.

2025년 4월11일 준공식이 열린 케냐과학기술원은 한국의 적극적 지원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고운정 제공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시작한 대표 사례로, 케냐과학기술원(Kenya-AIST) 건립 프로젝트가 있다. 한국 카이스트(KAIST) 설립의 주역인 정근모 박사(전 과학기술처 장관)가 2000년대 케냐 대통령 고문을 맡으며 카이스트의 교육과정 모델을 소개한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케냐 정부는 중장기 국가발전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력 제고와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에 교육의 질적 개선을 통해 국민의 국제 비즈니스 역량 제고와 경제성장 등을 이룬 우리나라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려 했다.

2016년 한국 대통령의 케냐 방문을 계기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2018년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 운영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금융협정이 체결되고 캠퍼스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게 됐다. 마침내 2025년 4월11일 준공식이 열리며 그 결실을 맺었다.

케냐과학기술원은 단순한 인프라를 넘어, 정책·학계·산업이 융합하는 ‘하이 임팩트’ 거점으로 자리매김해 케냐의 발전과 사회문제 해결 등에 실질적인 해법을 제공하리라고 기대받는다. 동시에 관련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진출하는 교두보 구실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아프리카를 발전시키고 케냐 국민에게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기반으로 과학기술원이 자리 잡도록 양 국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케냐과학기술원은 개교를 앞두고 신입생 모집과 교육과정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케냐과학기술원 완성의 의미

케냐의 비즈니스와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단순히 느긋함이나 무책임함이 아니라, 케냐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온 삶의 리듬이자 철학이다. 이곳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점은 단기적 성과 창출이 아니라 신뢰, 유연함 그리고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회신이 늦거나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더라도 관계를 이어가려는 진심 어린 태도를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케냐과학기술원도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완성됐고, 준공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프로젝트 수요가 늘어 무역관에서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폴레 폴레.’ 천천히 가도 목적지에는 결국 도착한다.

고운정 KOTRA 나이로무역관 과장 ko.uj@kot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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