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갈등’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중소기업부터 시작하자”
경제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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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하면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법적 정년 연령은 60살이지만 보통의 회사원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0살이다. 어차피 정년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법적 정년을 연장하는 데 관심이 없다.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몰라 불안하게 사는데, 누군가는 법적 정년을 보장받으며 해고당할 걱정도 없이 매년 연봉이 오르는 그런 직장을 다닌다? 정년을 연장해봐야 지금도 혜택을 누리는 누군가만 더 혜택을 길게 누릴 뿐이다. 그러니 누구 좋으라고 굳이 정년 연장에 찬성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50살에 직장에서 잘려도 돈은 벌어야 하니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평균 70살은 돼야 경제활동을 멈춘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다.
정년 연장, 피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정년 연장을 고려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출산·고령화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노동 공급은 141만 명 줄어들고,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은 3.3%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고령자도 일해야 한다. 2028년 이후 60살에 은퇴하는 고령층은 연금을 받을 때까지 5년간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령층 빈곤율도 낮춰야 한다. 노령층 고용을 촉진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 논의는 많은 갈등을 유발하지만 합리적인 해법은 있다. 고령층의 노동 기회를 보장하되 생산성 하락을 고려해 임금체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선 정년제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에게도 정년제도는 필요하다. 정년제도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는 제도 중 하나가 정년제도다. 첫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직장에 다시 입사해야 한다. 만약 55살이 정년인 사회라면 52살 노동자가 재취업을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60살이 정년인 사회거나 65살이 정년인 사회라면 52살 노동자가 재취업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많은 중장년층이 알게 모르게 정년제도 덕분에 노동 기회를 얻고 있다.
정년 연장은 누구나 다 예상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 부작용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서 더 크게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이 선호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정년 보장과 함께 근속연수에 따라 매년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구조로 돼 있고, 어지간해서는 해고되지 않는다. 이런 직장에서 정년제는 나이를 이유로 해고해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제도로 활용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해고가 가능한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의 고용 부담이 커지고, 청년 취업률을 낮출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도 심화된다.
2016년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직장의 정년은 60살로 연장됐는데 임금체계 조정 내용은 빠졌다. 한국은행에서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보니, 고령 노동자 1명이 늘어날 때 청년 노동자는 0.4~1.5명이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임금체계 변화 없이 갑자기 정년을 연장하면서 고령 근로자가 늘어나게 되자 기업들이 조정이 용이한 신규 채용을 줄였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층에도 긍정적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는 2016년 정년 연장 이후 2019년까지 2.3%포인트 높아졌다. 그런데 2020~2024년에는 고용 증가가 1.3%포인트로 도입 초기보다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한국은행은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자 권고사직,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 다양한 인사·노무 정책을 시행해 고령 근로자 수를 점차 줄여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또 “정년 연장의 혜택이 고용 보호가 상대적으로 강한 유노조 기업 및 대기업 일자리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심화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정년 연장의 긍정적 효과를 누리면서 부작용을 줄이려면 고령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되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개편해 고용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는 정년 연장 정책을 추진하며 ‘계속고용’이란 용어를 쓴다. 계속고용에는 정년 연장과 재고용이 있다. 정년 연장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퇴직 연령을 연장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재고용은 퇴직 뒤 다시 근로계약을 맺는 방식이라 임금이 조정된다.
생산성 따른 임금체계 조정 관건
사실 중요한 포인트는 생산성에 따라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는지다. 퇴직하지 않고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다면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이나 차이가 없다. 고용이 유지된 상태에서 임금체계를 바꾸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퇴직 후 재고용’이란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는 60살 넘어서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노사 합의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다면 정년 연장이냐 재고용이냐는 그리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계속고용은 더 나이 들어서까지 일할 기회를 주는 제도이고,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다. 다만 노동계는 노동조건 변경 없이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구조를 유지하며 정년을 연장하도록 요구한다. 기업도 계속고용 연령을 늘리는 데 반대하지 않지만 고령층의 생산성에 맞게 노동조건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계속고용 제도가 만들어지길 요구한다. 양쪽은 ‘60살 이후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길목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미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재고용이 이뤄지고 있다. 정년제도는 ‘최소한 60살까지는 고용하라’는 것이지, ‘60살이 넘었으니 고용하지 말라’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강성 노조로 유명한 현대자동차는 2019년부터 재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대차 기술직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퇴직할 때 임금이 매우 높다. 퇴직 뒤 다시 입사하면 초봉 수준의 임금이 책정된다. 하지만 익숙한 노동환경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보니 노동자들은 재고용 인원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한다. 기업 쪽도 숙련기술을 가진 인력을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기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소 제조업체도 고령층 고용을 점차 늘리고 있다. 중소 제조기업에 다니는 한 직원이 전해주는 현장 상황은 이렇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년과 무관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 일하는 곳도 30% 정도는 60살 이상이다. 이곳에 입사한 뒤 그런 분들을 보면서 나도 연금 나올 때까지 근무하는 게 목표가 됐다. 정부 정책 지원으로 이런 고용형태를 가진 직장이 늘어나면 국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목소리가 답이다. 계속고용 연령 확대는 흔히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 먼저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중소기업 등에 더 적합할 수 있다. 청년선호 일자리(대기업·공기업)는 고령층 고용을 하지 않아도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계속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보조금 지원 등 정책을 추진하기에도 중소기업이 수월하다. 고용부 관계자도 “고령층 고용 지원 정책을 하려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게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선호 일자리에 대한 계속고용은 청년 고용 축소,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등을 고려해 좀더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루빨리 제도 개선해야
2025년 5월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공식적인 방향성을 제언했다.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고령 노동자에게 기회가 부여돼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적정임금이 보장돼야 하며, 연공서열에 기대어 과도하게 임금을 책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청년선호 일자리에 대한 계속고용은 오히려 도입을 늦추도록 제언했다. 공익위원들은 ”청년의 신규 채용 규모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관계사로 전직 등의 방식도 계속고용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저출산·고령화는 한국 사회가 피할 수 없는 변화다. 계속고용 연장은 기업,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하다. 임금체계 변경 없이 매년 임금이 오르는 방식의 정년 연장은 경제·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 기업과 노동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며 시간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는 일자리에서 배제될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계속고용 노동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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