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후계 놓고 다시 티베트에 관심 中, 후계 지명 통해 정신적 지배 강화 노려 20년 ‘중국화’ 노력 결실 없자 유아 세뇌로 티베트, 한 번도 中 직접 지배 받은 적 없어
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종교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AP 연합뉴스
티베트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들어왔다.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가 2일 90세 생일(6일)을 맞아 다음 달라이 라마(15대) 지명은 자신이 세운 재단이 맡을 것이라고 하자, 중국 당국이 발끈하며 그 지명권은 중국정부에 있다고 반박하면서다.
정교일치 사회인 티베트는 종교적 정치적 최고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넓은 바다 같은 스승이란 의미)가 입적하면 그의 현신인 환생자를 지명해 달라이 라마 지위를 계승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이 전에 방문했던 티베트 자치구의 한 마을에 서한을 보내 “북두칠성을 보고 가면 길을 잃지 않고, 공산당과 함께 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 언급에 동요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두 장면은 최근 불거진 ‘시진핑 실각설’에 편승해 티베트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나 하는 긴장감을 낳고 있다. 베이징에 정치적 급변이 생기면 달라이 라마의 후계 향방과 맞물리면서 티베트인들 사이에서 다시 독립의 열망이 촉발될 수 있다.
달라이 라마 환생자 지명권 놓고 정당성 논란
달라이 라마 지명은 원래 티베트 불교의 2인자인 판첸 라마(대학자 스승)가 하게 돼 있다. 판첸 라마의 환생자는 달라이 라마가 지명한다. 티베트불교는 이렇게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가 서로 환생자를 교차 지명하게 돼 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 있는 11대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1989년 10대 판첸 라마가 입적하자 당시 게둔 최키 니마라는 소년을 차기 판첸 라마로 지명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게둔 최키 니마가 지명된 지 3일 만에 가족과 함께 납치했고 현재까지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대신 관제 판첸 라마를 세웠다. 중국정부는 이 어용 판첸 라마를 통해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지명권을 행사한다는 계획이다.
현 14대 달라이 라마(법명 톈진 갸초)는 1959년 티베트 독립 봉기가 실패하자 인도 히말라야 산악지대인 다람살라로 넘어와 지금까지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세계를 주유하며 티베트불교 특유의 명상법과 비폭력 정신을 전파해 세계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이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티베트 자치구 약 350만 티베트인들은 비롯 중국 공산당의 통치를 받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그의 감화 속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티베트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는 자신의 환생자는 티베트에서 나오지 않고 자유세계에서 나올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판첸 라마를 통해 후계자를 정하려는 데에 일찌감치 쐐기를 박았다.
그는 달라이 라마 제도의 전통과 명맥을 유지하고 환생자 지명을 위해 비영리단체 ‘가덴 포드랑 재단’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엔 티베트불교 전통의 각 종파 지도자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협의해 미래 환생자를 지명토록 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판첸 라마를 통해 15대 달라이 라마를 지명할 참이다. 현재 티베트 자치구는 명색만 ‘자치’이지 행정과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정부가 파견한 관리가 맡거나 감독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신적 구심점에서는 아무래도 공백이 있다. 티베트인 대다수는 관제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들을 정신적으로도 지배할 수 있어야 중국과 완전히 통합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에 따른 다양한 방책을 실시, 구상해왔고 그 중에서도 조기 세뇌교육이란 방법을 쓰고 있다.
유아기 때부터 티베트어와 격리해 민족 정체성 박탈
중국 공산당 정부는 티베트 지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탁아소·유치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일찍부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도입된 지 20년이나 된다. 티베트 문화를 억압하고 공산당 통치에 대한 반대를 무디게 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잘 작동하지 않았다. 2009년 2월 승려 벤 타페이가 달라이 라마 초상화를 들고 독립을 위한 소신공양을 한 이래 수년에 걸쳐 100명에 이르는 티베트인들이 스스로 몸을 태워 저항했다.
계속되는 저항에 좌절한 중국 당국은 이제 4살밖에 안 된 어린이들을 티베트어와 티베트 생활 방식을 흡수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부모와 집으로부터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이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에 관한 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한다. 티베트의 직접 취재는 언감생심이요, 순수 관광목적의 제한된 방문만 허용하고 있다. WSJ는 중국 정부문서, 소셜 미디어 게시물, 글로벌 인권단체들의 보고서 등을 이용해 현재 티베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아 세뇌교육의 실상을 전했다.
WSJ는 시진핑이 “붉은 유전자가 혈액에 녹아들어 심장까지 스며들 수 있도록 아기 때부터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며 유아 집체교육을 위한 기숙사 설립에 수억 달러를 쓰고 있다고 했다.
20대 티베트인 몇 명은 WSJ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어린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고 전한다. 티베트어 초등학교에 다녔고 7학년 때 기숙학교에서 있었던 21세의 한 여성은 어린 친척들이 6살 때부터 중국 기숙학교에 입학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만다린어로 배우기 때문에 만다린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나 조부모와의 의사소통에 지장을 준다고 소개했다.
지난 가을 중국을 떠난 이 여성은 어린 아이들이 서로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꾸짖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이 티베트어를 사용하더라도 그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언어는 만다린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러한 경험은 주목할 만한 변화를 시사한다. 중국 민족 정책을 연구하는 컬럼비아대 정치학자 텐진 도르지(Tenzin Dorjee)는 “이런 일은 티베트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티베트인들은 서로 중국어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어요”라고 했다.
인권단체 티베트 행동 연구소(Tibet Action Institute)는 티베트 자치구와 인근 4개 성의 일부를 포함하는 중국 티베트 지역 전역의 기숙학교에 80만 명 이상의 학생이 집체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학령기 티베트 어린이 전체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이 연구소는 지방정부와 연구자들이 보고한 티베트 지역의 기숙률을 바탕으로 추정치를 추정했다.
이러한 정체성 말살 정책은 2013년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강화됐다. 기숙학교 제도를 확대하고 2021년부터는 교육지침에 이중언어 교육 조항을 삭제했다. 그해 시 주석은 공산당 주석으로 30년 만에 처음으로 티베트를 방문했다. 수도 라싸에서 그는 관리들에게 “위대한 조국, 중국인, 중국문화, 중국공산당,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정체성을 더 강하게 인식시킬 것”을 촉구했다.
티베트는 역사·문화·지리적으로 중국과 완전히 달라
티베트는 중국 내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히 그 정체성이 뚜렷하다. 역사적으로도 한족 문화권과 동화하기가 힘든 매우 독립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위구르와 함께 이 ‘하나의 중국’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라는 말을 듣는다.
티베트는 자치구의 면적만 122만km²로 남한의 12배 크기에 인구는 350만 명 정도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티베트 면적은 이웃한 칭하이성, 스촨성, 간쑤성, 윈난성 일부지역과 합쳐 220만km²에 이른다. 이 너른 지역에 약 75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넓게 분포한다. 전체 중국 영토에서 자치구는 약 13%, 전체 티베트는 23%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말을 배우는 시기인 4살부터 티베트 아기들을 집단 기숙학교에 투숙시켜 중국어와 중국문화 세뇌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티베트를 완전히 중국에 동화시킴으로써 독립의 싹을 뽑아버리겠다는 의도다. 그만큼 티베트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에 티베트를 잃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티베트가 없는 중국은 재앙 그 자체다. 미국과 패권경쟁은커녕 민족적 경제적으로 통합국가로서 존재하기도 어렵다.
첫째, 티베트에서 분리 독립 요구가 거세지면 신장 위구르, 내몽골, 만주족의 동북3성(중국화가 많이 진행되긴 했지만), 광시 좡족, 홍콩, 대만(현재도 실질적 독립국) 등의 독립운동이 분출돼 국가가 사분오열 될 수 있다. 게다가 언어 및 종족적 차이가 적지 않은 한족 내 북방과 남방 간에도 원심력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티베트가 분열의 시발점이 되지 않도록 틀어막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 이유로서 티베트는 중국에 수자원을 공급하는 급수지다. 영토 내를 흐르는 양쯔강, 메콩강의 발원지가 티베트이고 황하도 그 남상이 티베트고원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영토 밖의 갠지스강, 인더스강, 브라마푸트라강 등 인도와 동남아시아 수원지도 티베트 고원으로서 중국은 티베트를 영유함으로써 자국 내는 수자원을, 외국에는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안보적 이유에서 티베트는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 티베트는 가상 적 중 하나인 인도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면서 역량을 동쪽으로 모을 수 있도록 해준다. 티베트가 독립하면 십중팔구 인도와 가까워질 것이고 이는 서쪽에 새로운 안보 위협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중국이 티베트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세계사적으로 전쟁이 아니고서는 점령한 영토를 순순히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토 야심은 비단 중국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지리적 정당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 점에서 중국의 티베트 병합은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
사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 마오쩌둥 군대가 침입하기 전에는 한 번도 ‘한족 중국’의 직접적 지배를 받은 역사가 없다. 청, 명, 원 왕조 때 잠시 보호국 관계일지언정 중국 관리가 파견돼 통치 받는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티베트가 최전성기를 누렸던 8세기 토번왕국 시대에는 당나라 도읍 장안을 점령해 당으로 하여금 굴욕적 화친조약을 맺도록 했다.
중국이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희극적이다. 이 점에서 4살 유아들을 부모로부터 떼어 모국어를 배우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행위는 ‘제노사이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