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 (5)호스피스, 삶을 위로하는 가장 따뜻한 동행

미술 요법을 받던 환자가 가족과 함께 미소를 짓고, 퇴원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꾸리는 이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환자의 목욕을 돕고, 의료진은 환자와 눈을 맞추며 온기를 나눴다. 호스피스 병동의 일상은 차분하고 따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곳은 환자가 남은 시간을 ‘자기답게’ 보내고, 가족의 아픔까지 어루만지는 진정한 치유의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35년 넘게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에 따뜻한 ‘볕’이 돼 준 박명희 팀장이 있었다.

박 팀장은 호스피스 병동의 진짜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환자 개개인의 삶과 신념, 살아온 시간을 지지하고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 병원이지만 불교 신자에겐 찬불가를, 개신교 신자에겐 찬송가를 불러주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한다.
“제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환자가 자기 죽음을 가늠할 때마다 박 팀장은 그 질문 속에 숨겨진 두려움을 헤아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함께 계획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 다음을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큰 위로가 될 것이란 믿음에서다. 그는 “어떻게 죽느냐 보다 남은 삶을 얼마나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간호사·자원봉사자·원목자·사회복지사 등 돌봄공동체는 환자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선물하고 있다. 환자 친구들과 깜짝 생일 파티를 열고, 화가가 꿈이었던 이를 위해 복도에 작은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셰프복을 입은 조리장이 환자 한 사람을 위한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런 세심한 배려와 정성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된다. 박 팀장은 “환자들은 뭔가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야 마땅한데, 종종 누워만 있는 것이 민폐라고 여겨요.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내가 잘 살아왔고, 인정받은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수일 내 임종이 임박한 이들뿐만 아니라 말기 환자도 호스피스를 찾는다. 증상이 안정되면 환자는 집으로 돌아가 ‘가정형 호스피스’를 통해 돌봄을 이어간다. 환자의 약 45%가 퇴원해 집에서 맞춤형 돌봄을 받고 있다. 박 팀장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환자에겐 큰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곳은 의사 5명, 간호사 2명, 사회복지사 등 전담 의료팀이 매주 2~3회씩 가정 방문을 할 정도로 인프라가 충분하고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가정형 호스피스는 숫자가 적어 모두가 이용하기는 힘들다. 박 팀장은 “많은 환자가 집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가정 호스피스가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 병동을 거쳐 간 이들이 남긴 말이다. 박 팀장과 돌봄공동체는 끝까지 환자 곁을 지키며 이별을 앞둔 가족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사별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슬픔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정성과 사랑에 화답하듯, 누군가는 다시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고, 편지나 후원금을 전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곳은 ‘떠나는 이’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남겨진 이들’까지 품는 치유의 공간이다.
특히 박 팀장이 맡은 중요한 역할은 환자와 가족이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사망하기 수일 전부터 의식이 흐려지고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마지막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앞당겨진 시점에 이뤄져야 한다. 그는 “가족들은 ‘시간이 더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어요. 이때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잘 보내주는 것이죠”라고 전했다.

때때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은 잊히거나 외면당할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박 팀장은 그런 환자의 마음을 다독이고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해요’ ‘당신을 기억할게요’ ‘우리 걱정하지 말아요. 잘 살게요’ 같은 말을 건네라고 조언했다. 이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환자와 남은 가족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고, 이별의 시간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작별을 준비했을 때 그 이별은 깊은 상실 속에서도 따뜻한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 그래서 박 팀장과 돌봄공동체는 오늘도 환자와 가족이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마지막 선물’을 남길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다.
김은혜 기자 ehkim@nongmin.com
삶의 마지막을 품격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점차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낮은 이용률과 부족한 전문인력·시설 문제가 여전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은 임종기에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응답했으나 현실은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202곳에 불과하다. 입원형 호스피스는 103곳(1798 병상), 가정형은 39곳, 자문형은 42곳에 머물고 있다. 자문형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와 가족이 일반 병동이나 외래 진료 중에도 호스피스전담팀으로부터 통증 관리, 심리적 돌봄 등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별도 병동 입원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실제 이용자 수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호스피스를 처음 이용한 환자는 2만4318명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 보면 입원형만 이용한 환자는 1만509명, 가정형은 617명, 자문형은 3914명이었다. 나머지는 여러 형태를 함께 이용한 경우다.
2024년 기준 호스피스 평균 등록 기간은 29.5일로, 대부분 환자가 임종 직전에서야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입원형 호스피스 이용자 1만3904명의 평균 이용 기간은 25.6일이었다. 가정형만 이용한 301명은 평균 45.2일, 자문형 이용자 2531명은 평균 8.2일에 불과했다.
반면 입원형과 가정형을 함께 이용한 1084명은 평균 70.4일이었다. 입원형·가정형·자문형 호스피스를 모두 경험한 444명은 평균 94.1일로 가장 긴 이용 기간을 나타냈다. 이는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할 경우 보다 이른 시점부터 지속적인 돌봄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정부는 2028년까지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360개소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는 임종기 환자에만 호스피스 이용이 허용되고, 특히 가정형 호스피스는 극히 제한된 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대균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는 “물리적 쇠약과 정서적 불안을 겪는 생애 말기 환자는 대부분 자신에게 익숙한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병원 중심의 단절된 돌봄은 반복적인 입·퇴원, 즉 ‘회전문 현상’을 초래해 삶의 마지막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자가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을 받고 환자의 삶터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의료·돌봄·복지서비스가 끊김이 없이 연결되는 지역사회 기반 통합 돌봄 체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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