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주, 한전·가스공사에 “요금 올려라” 압박할 수도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은 큰 변화에 맞닥뜨리게 됐다. 상법(商法)은 ‘기업의 헌법’이라고 불릴 만큼 기업 활동의 근간이 되는 기본 법률로, 개정안은 대통령 공포 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된다. 다만 이사(理事)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핵심 조항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재계에서는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 우리 기업들의 경영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①투자·M&A는 주춤, 소액주주는 혜택
재계가 가장 걱정하는 분야는 반도체, 이차전지 산업 등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분야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독자 개발을 선언한 1983년 이후 1987년까지 1400억원 누적 적자를 냈는데 만약 당시 주주들이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남발했다면 현재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투자는 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인수·합병(M&A)도 성공적이지 못하면 주주 이익에 반했다는 이유로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대한상의의 지난해 상장사 대상 조사에선,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시 M&A 계획을 재검토하겠다’는 응답이 44.4%에 달했다.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과거보다 훨씬 더 의식하면서 경영 판단을 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문제는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라 어느 장단에 맞춰도 배임(背任)으로 소송당할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②한전은 전기료 딜레마...정부도 피소 가능성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상장 공기업들도 ‘딜레마’에 빠졌다. 두 에너지 공기업은 누적 적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원가 이하로 전기, 가스를 공급해왔다. 하지만 앞으론 적자가 지속되면 외국계 투자자가 “요금을 올리지 않아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걸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한전과 한국가스공사는 정부 측 지분이 과반(過半)인 만큼, 소액주주들의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각종 소송 리스크가 커지면서 경제 단체들은 면책 조항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의 의무를 다했을 경우엔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면책해주는 ‘경영 판단 원칙’을 상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③이사회 독립성은 높아지나, 외부 공격도 잇따를 듯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소위 ‘3% 룰’은 최대 주주 측의 영향력을 크게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기 투자가 목적인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은 기업들에 고민거리다. 재계 관계자는 “대주주 의결권은 3%로 묶이는데, 투기 자본은 ‘지분 쪼개기’를 통해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이사회가 외부 세력에 장악될 우려가 커졌다”며 “R&D(연구개발)나 시설 투자에 써야 할 자금이 경영권 방어에 소진되고 기업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중견기업은 가족 중심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고 시총이 크지 않아 쉽게 경영권을 탈취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했다.
경제 단체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한 주당 의결권을 복수로 주는 ‘차등의결권’이나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필(신주인수권)’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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