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의 시작…제75회 오산 죽미령 전투 추도

백소민 2025. 7. 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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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발발 이후 유엔군의 첫 전투는 경기도 오산 죽미령에서 벌어졌습니다.
전쟁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죽미령 전투의 75번째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백소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1950년 7월 5일, 경기 오산시 죽미령 고개.

6.25가 발발한지 열흘 만에 미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6시간 15분 동안 이어진 혈투 끝에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이끄는 540명의 미군 중 18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습니다.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유일한 한국군인은 연락장교 윤승국 대위.

전력 열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지리를 잘 알던 윤승국 대위가 행렬을 이끌어 부대원 200여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장영심 / 고 윤승국 소장 배우자: (북한군이) 더 내려 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더 이상 못 내려가게, 딜레이 미션을 했다고 해요. 지연작전.]

비록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남하 지연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로도 꼽힙니다.

【스탠딩】
75년이 지나, 당시 참전 용사 유족과 한미 양국 관계자들이 그 날을 기억하기 위해 한 곳에 모였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스미스부대의 후신인 하와이주둔 부대 대표가 참여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숀 스트로 중령은 매년 행사에 참여해 540명의 추도비를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숀 E 스트로 / 미 제 25사단 2연대 1-21 보병대대장: 540명의 군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육군 그리고 한국 국민과 함께하는 한미 동맹의 토대를 마련하고 우정을 쌓은 분들입니다.]

지자체 차원의 기념행사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권재 / 오산시장: 이런 큰 의미가 있는 죽미령 전투를 우리 국민들 그리고, 우리 오산 시민들이 다 추도를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주도해 주시길 바라고요.]

희생을 통해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

다시 한번 죽미령 전투의 의미를 되새길 때입니다.

OBS뉴스 백소민입니다.

<영상취재 : 김지현 / 영상편집 : 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