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두 번째 인생-은퇴 이후, 모델이라는 꿈

기호일보 2025. 7.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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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도 은퇴설계전문가/전 농협중앙회 교육원 교수
박상도 은퇴설계전문가

우리 사회에서 '은퇴'라는 말은 오랫동안 인생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수십 년간 직장과 가정을 위해 달려온 이들이 어느 순간 사회에서 한 걸음 물러나며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공허함을 느끼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최근 '시니어 모델'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면서 은퇴 후 삶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무대 위에서 다시 빛나는 두 번째 인생, 그 중심에는 은퇴 이후 모델에 도전하는 시니어들이 있다.

과거에는 '모델'이라고 하면 젊고, 늘씬하며, 피부가 탱탱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만큼 '젊음'은 모델의 전제 조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60대, 70대, 심지어 80대 시니어 모델들이 패션쇼 무대뿐 아니라 광고, 방송, 온라인 콘텐츠에서 활약하며 나이듦의 새로운 의미를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세월의 흔적을 감추기보다 당당히 드러내며 인생의 깊이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주름과 은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자부심임을 말한다.

은퇴 후 모델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자기표현에 대한 갈망'이 자리한다. 직장과 가정을 위해 달려온 삶에서 벗어난 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과 맞닥뜨리는 시기다. 무대 위에서 걷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은 단순한 활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인정하며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많은 시니어 모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모델 활동은 나를 다시 살게 한다."

이처럼 시니어 모델은 '두 번째 인생'을 상징한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현재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노년의 정체성 상실'이나 '소외'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처럼 은퇴 후에도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인생 후반부를 설계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취미나 여가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경험과 매력을 사회에 선보이며 다양한 세대와 소통한다.

더욱이 산업계도 이 새로운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고령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걸맞은 모델이 필요해졌다. 시니어 모델은 소비자에게 현실감과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젊은 모델과는 다른, 세월을 겪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신뢰를 더한다. 이는 단순한 광고 효과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하는 문화적 변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이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체적 한계와 건강 문제, 세대 간 인식 차이, 전문 교육과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 등이 큰 장애물이다. 특히 '나이듦'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시니어가 모델로 활동하는 일이 아직은 특별한 이슈로 취급되고 '특별한 경우'로만 여겨지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과 함께 시니어 모델을 위한 교육, 매니지먼트, 노동 조건 개선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은퇴 후 모델에 도전하는 시니어들의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만의 '두 번째 인생'을 쓰고 있다. 무대 위에서 당당히 걷는 그들의 모습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두 번째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까?"

시니어 모델이 되면서 얻는 것은 단순한 '일자리'나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 회복, 사회적 연결감 그리고 무엇보다 '존재감'이다. 이것이 바로 은퇴 이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 모델 현상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무대 위에서 빛나는 두 번째 인생은 더 많은 시니어에게 희망을 준다. 은퇴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이가 들었다고 꿈을 접거나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동안 쌓은 경험과 개성이 더 큰 무기임을 시니어 모델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들의 발걸음이 더욱 많아지고,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더 넓어질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풍요롭고 따뜻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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