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블루, 고향 바다의 풍경이 되다

최명진 기자 2025. 7. 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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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작가 초대전 ‘고향 가는 길’…오는 19일까지 은암미술관
버텨내고, 끝내 일어서는 ‘아버지의 바다’ 그 희망의 서사
기억의 편린속 스며든 고향 풍경 ‘나의 바다’ 화폭에 담아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 미술관 1층에 자리한 이 그림 앞에 서면 작가의 깊은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유화 물감을 두텁게 쌓고 나이프로 밀어낸 화면은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심상의 바다를 펼쳐 보인다.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아버지의 바다를 거닐었다’

오는 19일까지 은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혜선 작가의 기획초대전 ‘고향 가는 길’은 작가의 25번째 개인전이자 고향 광주에서 여는 첫 전시다.

40여 년간 서울과 인천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고향의 바다, 나아가 자신의 뿌리를 되짚었다. 전시 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며 총 45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명절에 고향 가는 길, 그 설렘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 강진, 내가 자란 광주를 떠올리며 1층은 ‘아버지의 바다’, 2층은 ‘나의 바다’로 설정했죠.”

작가는 고향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두 층의 구성을 잡았다. 아버지의 생애를 상징하는 바다는 전통과 삶의 서사가 깃든 어두운 블루톤으로 표현됐다.

“블루는 아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둡지만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바다. 그게 저에겐 고향의 이미지였어요.”

1층에는 이처럼 구성된 ‘아버지의 바다’가 펼쳐진다. 강진에서의 유년 기억과 아버지의 생애 그리고 광주에서 보낸 학창 시절이 겹쳐진 장면들이 거친 물감층으로 형상화됐다.

그중 ‘장주지몽’(莊周之夢) 시리즈는 일상의 바다가 성인이 된 후 꿈처럼 인식되는 과정을 담았다.
‘장주지몽[莊周之夢]-BLUE 1’

“작업하는 순간은 늘 꿈속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바다는 현실이 아니라 ‘꿈속의 남도 바다’죠.”

2층은 명상과 치유라는 주제로 구성됐다. 기존 작업들을 중심으로, 색을 덜어낸 작품과 부드러운 질감의 화면이 펼쳐진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감각은 ‘소리’다.

드뷔시 음악을 들으며 완성된 작품은 물론,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들으며 그려낸 ‘Listen as the crowd would sing’ 같은 작품도 있다. “그 곡을 들으며, 몰락한 왕 앞에서 군중이 환호하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음악의 리듬과 질감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싶었죠.”

작업 방식 또한 독특하다. 물감의 농도 차이를 활용해 층을 쌓고, 붓이 아닌 나이프로 밀며 화면을 만들어낸다.

“밑에는 묽은 물감을 깔고, 그 위에 점점 농도가 진한 물감을 올려요. 마지막엔 수제 화이트 물감으로 실리콘처럼 촉촉하게 마무리하죠. 몸 전체를 사용해서 가로지르는 이 작업은 심연을 조용히 밀어내듯, 내면을 향해 천천히 스며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작가는 이번 전시가 오랜 시간 마음속 품어온 ‘귀향의 여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광주 특히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행복해요. 준비하면서 고향의 색은 뭘까, 질감은 어떨까 끊임없이 고민했죠. 고향은 마치 감정이 스며든 기억의 풍경 같아요. 그림을 통해 그런 기억과 감정을 꺼내 보여드리고 싶어요.”
병영에서 칠량까지’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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