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 사건]〈18〉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우주기술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이들이 우리별 1호 개발·발사계획에 참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한 결과 1992년 무게 48.6㎏, 크기 352×356×670㎜의 우리별 1호가 탄생했다.
고도 1300㎞ 우주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우리별 1호는 19시35분에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 첫 교신에 성공했다.
우리별 1호 발사 후 3개월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우주기술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지구 관측과 저궤도 이동통신, 우주과학 실험을 위해 선진국들이 앞다퉈 고성능 소형위성 경쟁을 전개했던 것과 대비됐다.
정부는 우주산업 개척 필요성을 인지, 1990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우리별 1호 개발을 위해 총 27명의 학생이 영국·일본·미국 주요대학에 파견돼 기술을 배웠다.
이들이 우리별 1호 개발·발사계획에 참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한 결과 1992년 무게 48.6㎏, 크기 352×356×670㎜의 우리별 1호가 탄생했다.
발사는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의 쿠루우주센터에서 이뤄졌다. 아리안4호에 실린 우리별 1호는 로켓 발사 약 23분 후 발사체로부터 분리됐다. 고도 1300㎞ 우주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우리별 1호는 19시35분에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 첫 교신에 성공했다. 우리별 1호 제작과 발사에는 총 38억원이 투입됐다.
우리별 1호로 자신감은 얻은 우리나라는 곧바로 2호 개발에 돌입했다. 우리별 1호 발사 후 3개월 만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우주 시대를 열었다. 우리별 2호는 KAIST에서 선발된 국내팀과 우리별 1호 제작에 참여했던 영국 서리대학팀이 협력해 개발됐다.
우리별 1호를 개발하며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로 우리별 2호 제작에는 국내 기술력이 빛을 발휘했다. 1만2000개 부품 중 827개를 국산 부품을 이용했으며, 17개 협력업체가 부품을 생산·공급했다. 우리 별 1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성디스플레이, 애플 폴더블 전용 라인 구축
- 내년 최저임금 1만320원…17년만에 노사공 합의 결정
- 코스피 나흘 연속 상승 '연일 신고가'…전망치 높이는 증권가
- 비트코인 최고가 다시 경신···11만6000달러 돌파
- S&P·나스닥 최고점···엔비디아 4조 달러 뚫고 마감
- 머스크, 최신 AI 챗봇 '그록4' 출시…“박사 수준 이상”
- '맨발로 맞선 화염'... 프랑스 화재 현장서 6명의 목숨을 살린 '영웅'
- 인형 뽑으려다 기계 안에 갇힌 아이…美 경찰 긴급 구조
- 데뷔하자마자 차트 휩쓴 록밴드 정체는... “멤버도, 노래도, 가사도 모두 AI”
- 현대차, '아이오닉 6 N' 공개…“일상·트랙 모두 만족시킬 고성능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