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환등기' 출간…기억과 영화가 교차하는 내면의 연출
허구와 진실 뒤섞인 회고록…“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환영은 믿는다”

잉마르 베리만. 그의 이름은 이미 영화라는 예술의 무게를 바꿔 놓은 존재로 기억된다. 「제7의 봉인」, 「산딸기」, 「페르소나」, 「화니와 알렉산더」 등으로 그는 죽음과 신, 사랑과 죄의식을 탐색했고, 한 시대의 정서와 내면 풍경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그렇다면, 그 깊고 낯선 영화들의 뿌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환등기』는 그 답을 찾기 위한 가장 개인적이고 강렬한 여정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환등기'는 어릴 적 형에게 선물된 후, 베리만이 간신히 차지했던 물건이다. 그는 그 기계를 통해 처음으로 그림자와 빛, 상상의 힘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은 영화와 겹쳐지기 시작한다. 『환등기』는 이처럼 어린 시절의 경험, 가족과의 관계, 첫사랑, 결혼과 이혼, 외도와 실패, 영화감독으로서의 갈등과 번민, 세계적 예술가들과의 만남 등을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생생히 풀어낸다.
이 자서전이 특별한 이유는, 베리만이 자신의 삶을 단선적인 연대기로 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 회고록은,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각 장면이 서로를 반사하며 인물과 기억이 응시한다.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에 대한 찬사,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충돌, 리브 울만과의 연애, 할리우드에 대한 환멸, 탈세 스캔들 등 이 모든 에피소드는 그의 영화적 상상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암시하는 복선처럼 작용한다.
책에는 "잉마르 베리만은 『환등기』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폭로하였다"(뉴욕 타임스)라는 평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내면이 펼쳐져 있다. 꿈처럼 생생한 장면과 아슬아슬한 기억의 복원, 그리고 스스로도 의심하는 회상들이 어우러져,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영화감독 이경미는 "책 한 권이 스스로 태어나 죽음에 다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했다. 이는 단지 영화팬이나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감상이 아니다. 『환등기』는 결국,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한 편의 기억 영화이며, 그 스크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게 된다.
잉마르 베리만은 이 책에서 말한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본 환영들은 믿는다." 그 환영들이 생전의 필름을 넘어, 종이 위에서 다시 살아난다. 『환등기』는 잊히지 않는 이미지의 연쇄이며, 한 예술가의 눈을 통해 본 세계의 진실한 조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