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 몰라 수년 병원방랑… “희귀병은 ‘진단’이 가장 절박”

권도경 기자 2025. 7. 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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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치병 환자의 새 희망 ‘질병청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
신생아 때부터 골절 계속된 아이
희귀질환전문 양산부산대병원서
진단받고 나서야 본격 치료 시작
희귀질환 정보 부족해 오진 많아
진단지원질환 1248개→ 1314개
수혜 대상도 두배로 늘려 800명
지난달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부산대어린이병원 6층 63병동 복도에서 전종근(왼쪽) 부산대의대 의학유전학과 교수가 희귀질환인 ‘골형성 부전증’을 앓는 어린이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양산=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아이는 잘 기어가지도 일어서지도 못했다. 갓 1살이 되자 다발성 골절만 10차례 이상 당했다. 아무런 원인이 없거나 가볍게 부딪히기만 해도 뼈는 쉽게 부러졌다. 키도 또래보다 늦게 자랐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후 어렵사리 진단을 받았다. 콜라겐을 만드는 유전자에 결함이 생겨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 부전증’이었다. 완치되지도 않고, 근본적인 치료제도 없는 희귀질환이었다. 치료비는 감당 안 될 정도였다. 네댓 살 때 시설에 맡겨진 A 양은 정부 의료비를 지원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 경남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있는 부산대어린이병원 6층 63병동. 전종근 부산대의대 의학유전학과 교수(2025년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단장)가 이제 9살이 된 A 양 몸 곳곳에 청진기를 조심스레 갖다 댔다. 전 교수는 간병인에게 “아이가 병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달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A 양은 이 병원에 4개월마다 입원해 ‘파미드로네이트’ 주사를 맞는다. 골절 빈도를 낮춰주고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약물이다. 환자가 1년간 내는 돈은 100만 원가량이다.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질병청은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후 산정특례(진료비 본인부담률 10%로 경감)에 등록된 저소득층에게 본인부담금, 간병비, 특수식이 구입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양산부산대병원은 희귀질환 전문기관이다. 가깝게는 영남권, 멀리는 전남에서도 온다. 희귀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8000개 이상 있다.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은 5% 미만이다. 약이 있어도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치료비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다. ‘연골무형성증’ 환자의 경우 1주일에 한 번 주사를 맞으면 1년 동안 4억∼5억 원이 든다. 치료제가 없는 95% 환자는 평생 관리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국내에선 2만 명 이하 발생률을 보이는 질환으로 규정돼 있다. 국가관리 대상 희귀질환은 총 1314개다.

희귀질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이다. 진단이 안 되면 치료 자체를 시작할 수 없다. 희귀질환은 정보 비대칭성이 가장 심한 영역이기도 하다. 질환 자체가 생소한 만큼 객관적 정보가 부족해서다. 희귀질환자도 드물지만 이를 치료하는 의사도 ‘천연기념물’급이다. 전국에 희귀질환을 활발하게 치료하는 의사는 20명 안팎이다. 그나마 수도권에 70%가량 편중돼 있다. 임상 연구와 제약 인프라가 수도권에 몰린 탓에 정보는 자주 오도된다.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병원을 찾아 떠도는 ‘진단 방랑’을 몇십 년 넘게 겪는 환자도 상당수다. 검사비, 교통비, 체류비 등도 모두 떠안아야 한다. 생업마저 포기하는 환자도 있다. 전 교수는 “진단 방랑을 겪는 대다수 희귀질환자에게 진단은 치료 여부가 걸린 절박한 문제”라며 “환자들이 대부분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으면서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데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단과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공식 통로가 있어야 환자가 집 근처 병원에서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양산부산대병원 3층 진단검사실에서 이 병원 오승환(왼쪽)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와 전종근 부산대의대 의학유전학과 교수가 검체를 살펴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질병청은 지난 2023년 ‘찾아가는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희귀질환 검사·진단 인프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환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 참여 의료기관 34곳이 의심환자 혈액을 채취해 전문검사 위탁기관으로 보낸 후 유전자 검사 등을 진행하고, 양산부산대병원이 최종 진단을 내린 뒤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환자는 검체 채취 후 한 달 내엔 희귀질환 해당 여부와 병명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진단 방랑’ 없이 거주지와 가까운 병원에서 진단받고 치료도 받을 수 있다. 질병청은 올해 진단지원 대상 질환을 기존 1248개에서 66개 늘어난 1314개로 넓혔다. 진단 실수요와 희귀질환 증가 추세 등을 고려한 조치다. 진단지원 규모도 전년 대비 두 배로 늘린 800여 명이다.

환자와 의료진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환자 반응이 긍정적이어도 의사가 만족하지 못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전 교수는 “진단지원사업은 양측 만족도를 충족했다는 점에서 사업 필요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진단기관 지역 쏠림 현상도 해소한다. 이 같은 사업이 없다면 비수도권 환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전 교수는 “질병청의 진단지원이 없다면 비수도권 환자들은 서울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한다”며 “거주 지역에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지 않게끔 희귀질환 진단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이가 아프면 가족 공동체가 흔들린다. 명확한 진단은 치료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끝낼 수도 있다. 제때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 된다. 지원사업은 환자뿐 아니라 부모·형제 등 가족(3인 내외) 검사도 돕는다. 유전적 요인이 큰 희귀질환은 가계 내 추가 발병 위험이 높아져서다. 고위험군을 선별 관리하고 가계 내 유전질환을 이해하면 건강한 출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승환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긴 치료 여정을 내다볼 수 있어서 치료 계획을 세울 때 안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청은 희귀질환 진단 수요를 감안해 대상자 규모를 계속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권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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