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 ‘진짜’ 레이싱을 보여주마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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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레이싱에 인생을 건 남자들 이야기' 〈포드 V 페라리〉(2019)는 오랫동안 조셉 코신스키의 프로젝트였다.
땅에서 찍지 못한 레이싱 장면을 공중에서, 자동차 대신 전투기로 마음껏 찍어보았다.
〈탑건: 매버릭〉의 비행 장면을 찍은 노하우로 시속 300㎞가 넘는 레이싱의 속도감을 IMAX 포맷으로 담아냈다.
정해진 트랙을 따라 도는 레이싱이 매번 새로운 흥분을 자아내듯이,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인데도 도리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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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브래드 피트, 하비에르 바르뎀, 댐슨 이드리스

‘자동차 레이싱에 인생을 건 남자들 이야기’ 〈포드 V 페라리〉(2019)는 오랫동안 조셉 코신스키의 프로젝트였다. 실존 인물의 역사적 경기 장면을 폼나게 재현할 자신이 있었다.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기로 하고 대본 리딩까지 마쳤다. 하지만 거기까지. 촬영 한번 못 해보고 제작 중단.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게 이유였다.
창고에 넣어둔 이야기를 몇 해 뒤 다시 꺼내 시동을 걸었을 때,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조셉 코신스키가 아니었다. 〈나잇 & 데이〉와 〈로건〉의 감독 제임스 맨골드였다. 배우를 맷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로 바꾸고 만든 영화에 “관객이 보고 싶은 자동차 액션의 모든 것”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포함 4개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그때 조셉 코신스키는 〈탑건: 매버릭〉을 촬영하고 있었다. 땅에서 찍지 못한 레이싱 장면을 공중에서, 자동차 대신 전투기로 마음껏 찍어보았다. 빨리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거기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차례 개봉 연기. 집에 갇힌 시간이 많았다. 넷플릭스를 켜는 시간도 늘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 〈F1: 본능의 질주〉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한 팀에 드라이버 2명, 모두 10개 팀이 21번 레이스를 펼치는 F1 한 시즌이 통째로 담긴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특히 두 가지에 꽂혔다. 첫째, 가장 신경 쓰이는 라이벌은 다른 팀 선수가 아니라 같은 팀 선수라는 것. 둘째, 시즌 우승을 노리는 팀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그들을 이겨보고 싶은 꼴찌 팀이 주인공이라는 것. 그걸 영화로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 손을 떠난 레이싱 영화를 아쉬워하는 대신, 새 레이싱 영화를 뽑아 제대로 튜닝할 기회를 잡았다.
F1 챔피언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큰 사고를 당한 소니(브래드 피트). 몸도 마음도 크게 다친 뒤 30년 넘게 소속 팀 없이 온갖 대회를 전전하는 뜨내기 레이서. 옛 동료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이 찾아와 F1 최하위 팀 에이펙스(APXGP) 합류를 간청한다. 재능 있는 신인 레이서 조슈아(댐슨 이드리스)와 함께 이번 시즌 남은 10경기 가운데 단 1승만이라도 해달란다.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 눈엔 퇴물이고 조슈아에겐 꼰대일 뿐이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원없이 달려보고 싶었으니까.
누가 봐도 뻔한 이야기. 클리셰를 피해 갈 마음이 없는 시나리오. 그렇다면 승부수는 오직 하나. ‘진짜 같은’ 경기 장면이 아니라 ‘진짜’ 경기 장면을 찍어내는 것. 그렇게 1년 반 동안 실제 F1 경기를 따라다니며 실제 F1 레이서들과 함께 아홉 개 나라 실제 F1 서킷을 달렸다. 〈탑건: 매버릭〉의 비행 장면을 찍은 노하우로 시속 300㎞가 넘는 레이싱의 속도감을 IMAX 포맷으로 담아냈다.
정해진 트랙을 따라 도는 레이싱이 매번 새로운 흥분을 자아내듯이,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인데도 도리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팬데믹 이후 비어가던 극장을 다시 사람들로 꽉꽉 채워넣은 영화 〈탑건: 매버릭〉의 감독이, 또 한번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F1 더 무비〉는 레이싱을 ‘구경하는’ 영화가 아니다. 레이서의 시간을 ‘체험하는’ 영화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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