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계엄 혼란 막고, 코로나 대응으로 혁신 주체 입증

박수혁 기자 2025. 7. 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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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231, 0, 18);">지방자치 30년 현재와 미래</span>
<span style="color: rgb(0, 184, 177);">(3) 국가위기 때 진가 발휘한 지방분권</span>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 병력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계엄 당시를 되돌아보면 성숙한 시민 의식과 주민주체 의식, 역량을 가진 시민들이 한밤의 추위와 싸워가며 탱크를 막아섰습니다. 또 탄핵 국면에서도 응원봉을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등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순복 조선대 법학과 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서 교수는 지방자치 시민운동단체인 품질자치주민자치시민들(약칭 품자주자시민들) 대표회장을 맡고 있다. 서 교수는 ‘지방자치가 비상계엄을 막았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주민자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이요, 민주주의 성공의 조건’이라는 말처럼 내가 사는 마을과 동네에서부터,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자치와 자율의 훈련이 내재화된 덕분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평가했다.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은 가운데 지방자치가 12·3 비상계엄이나 코로나19 등과 같은 위기 속에 그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의미를 살펴본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 광주 5개 자치구, 5·18단체, 광주 지역 시민사회단체·종교단체 대표자들이 지난해 12월4일 새벽 광주시청 중회의실에서 ‘광주 비상계엄 무효선언 연석회의’를 열고 있는 모습. 광주시 제공

“지방자치가 비상계엄 막았다”

올해를 지방자치 ‘부활 30년’이라고 한 것은 대한민국이 이미 70여년 전에 지방자치를 실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52년 지방의원 선거를 통해 제한적으로 지방자치가 시작됐고, 1960년 지방의회·단체장 직선제까지 실시됐다.

하지만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으로 단체장이 임명직으로 전환되는 등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19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1991년 지방의회 선거, 1995년 6월27일 지방의원뿐 아니라 단체장까지 동시에 선출하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새롭게 태어나 서른살을 맞은 한국 지방자치의 성과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국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중앙정치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위기를 맞았지만 ‘지방자치 덕분에’ 시민들의 일상은 유지되는 등 전국이 그나마 안정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3월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요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중앙정치의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지난 30년간 뿌리내려온 민선 지방자치제 덕분에 전국이 큰 동요 없이 안정을 유지하면서 지역 발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재희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조교수도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은 중앙정치의 구조적 혼란 속에서도 지방자치가 건실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앞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직적 분권에 대한 헌법 개정 등에 대한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관선 단체장 시대였다면 비상계엄 선포 즉시 전국이 일사불란하게 통제됐고, 지역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상계엄 반대,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관선 단체장의 방해로 제약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탄핵 국면에선 대통령이 임명한 시도지사 등 지역의 단체장까지 모두 사실상 탄핵을 당하는 셈이어서 중앙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무정부’ 상태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전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비상계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비상계엄 해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방자치의 저력이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을 그나마 떠받쳤고, 지방정부가 중앙의 공백을 메우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외에서도 중앙정치의 공백을 지방정부가 성공적으로 메운 사례가 있다. 벨기에 중앙정부는 국회와 각 지방의회, 언어권 공동체 의회까지 모든 동의를 얻어야 총리 선출과 내각 구성이 가능한 복잡한 구조로 장기간의 무정부 상태가 여러차례 발생했다. 2019~2020년 493일간 무정부 상태가 발생했고, 2010~2011년에는 541일간 내각을 꾸리지 못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광범위한 자치권을 지닌 각 지방정부가 안정적인 행정 운영을 수행하면서 중앙정부의 공백기를 메워 벨기에 경제는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고, 시민들도 평온한 일상을 유지했다.

한정수 전북도의회 도의원은 “지방자치를 토대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내란과 탄핵의 전국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견제와 감시를 바탕으로 하는 더 강화된 균형적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지방자치 강화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 공영주차장에 설치된 ‘고양 안심카 선별진료소’의 모습. 고양시 제공

코로나19와 지방자치의 새로운 발견

코로나19 사태도 지방자치를 재조명하는 전환점이 됐다. 전세계적인 감염병 위기 속에 각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침을 따르거나 손과 발이 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방역 정책을 제안하거나 시행하며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대표적인 예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소개되는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2020년 2월부터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세계 첫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가 도입됐으며,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경기도 고양시가 처음으로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시작했다.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시도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성동구가 2020년 5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하는 등 각 지방정부는 정보무늬(QR코드) 기반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해 역학조사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 같은 지방정부의 혁신 사례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지역별 특색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도 눈길을 끌었다. 강원도는 넓은 면적과 산악지형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찾아가는 코로나19 진단검사 버스’라는 이름의 이동형 선별진료소를 운영했다. 또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전라남도는 마을 단위 방문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고, 노인 맞춤형 생활지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면, 청년 인구가 많은 경기도 성남시는 1인 가구를 위한 스마트 돌봄 서비스와 청년 특화 지원 프로그램 운영에 집중했다.

포스트 코로나와 자치분권 대토론회가 2020년 5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자치분권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자치분권위원회 제공

코로나19 사태를 재난으로 간주하고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실행한 것도 ‘지방정부’다. 전북 전주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 기본소득지원금을 지급하자 이런 흐름이 강원도와 서울, 경남, 경기 등 각 지방정부로 확산했으며, 결국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이어졌다.

김필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규제연구센터장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30여년 동안 꾸준히 발전했지만 실질적인 자치분권 실현에는 여러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전환점이 됐다. 코로나19 경험을 통해 지방정부가 단순한 중앙정부 정책의 집행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책 혁신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또 김 센터장은 “코로나19로 얻은 지방자치 분권의 경험은 앞으로 한국 지방자치제도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는 중앙집권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각 지역의 특성과 필요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할 수 있는 분권화된 협치 체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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