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유해 일부 확보” 주교회의, 유해함 사진 공개

박동미 기자 2025. 7. 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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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성 김대건(1821∼1846) 안드레아 신부의 것으로 판단되는 유해 일부를 확보했다고 2일 밝혔다.

주교회의는 이날 유해 증명서와 함께 유해가 보이는 유해함의 사진을 공개하고, 그 안에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가 보관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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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이 담겨 있는 유해함. 주교회의 제공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성 김대건(1821∼1846) 안드레아 신부의 것으로 판단되는 유해 일부를 확보했다고 2일 밝혔다. 주교회의는 이날 유해 증명서와 함께 유해가 보이는 유해함의 사진을 공개하고, 그 안에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가 보관됐다고 밝혔다. 김 신부의 유해는 순교 후 최소 200곳 이상으로 분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누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실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인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유해와 함께 보관하다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존을위해 올해 2월 19일 주교회의에 기증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신부는 외국인 성직자의 입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1846년 6월 백령도 해역 순위도에서 체포됐고, 옥중에서도 서한을 통해 신자들을 격려하는 등 헌신적으로 사목했으나 사제 수품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는 1836~1837년 조선에 각각 입국한 프랑스인 사제들로서, 한국인 성직자 양성과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쓰던 중 체포돼 1839년 9월 21일 한강 새남터에서 함께 순교했다.

이들의 유해는 유해함에 담겨 유해 증명서 액자 내부에 보관된 상태로 주교회의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교회의는 이 유해가 앵베르 주교·모방 신부·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가 확실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사제 3명의 모발은 한묶음으로 돼 있다. 이와 관련해 유해 증명서에는 “공인된 장소에서 추출된 유해를, 수정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금된 은제 유해함에 경건하게 안치하여 잘 닫고, 붉은색 비단 끈으로 묶어 인장으로 봉인”했다는 취지로 기재돼 있다고 전했다.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 증명서. 주교회의 제공

또한 이 문서에는 발급자인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서명과 함께 공식 인장이 압인돼 있으며 상서국장 조제 신부의 서명이 함께 있다고 덧붙였다. 날짜는 1925년 12월 16일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는 순교한 4명의 사제가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된 지 약 5개월 지난 시점이다. 다만 증명서에 수기로 적은 내용 중 일부는 글자가 흐려져서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관련된 문제를 전수 조사하는 중인데, 공적으로 확인할 증명서가 있다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고 설명하고, “이른 시일 안에 보존 처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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