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기본사회’를 보는 영케어러의 눈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정부가 처음 영케어러를 인지하고 돌봄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건 2022년 초였다. 정부가 첫 영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가족돌봄청년’이란 한국어 호명도 만들었다. 새로운 사업명들도 등장했다. 돌봄에 쓰느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돈을 쓰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려는 ‘자기돌봄비’ 수당, 돌봄이나 가사, 병원 동행이나 심리 지원 등에 활용할 ‘일상돌봄서비스’ 바우처, 돌봄 코디네이터가 영케어러 사례 관리를 맡는 ‘청년미래센터’가 그것이다. 올해 2월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며 영케어러 지원이 시범사업을 넘어 법제화됐다. 늘어난 새로운 이름들에 비례해, 영케어러가 겪는 사회적 고통의 양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분명 새 이름들 덕에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 하지만 새롭게 쥐어진 희망이 실제 영케어러의 삶의 어려움을 해소해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정부의 영케어러 대책이 정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확인된 결과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가족돌봄청(소)년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810명 영케어러가 필요하다고 답한 복지 지원은 76.6%로 생계비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74%로 의료 지원이었다. 실제 생계비 지원이나 의료비 지원을 경험한 비율은 각각 27.4%, 30%에 그쳤다. 그럼에도 새롭게 생겨난 이름들 중에는 안정적인 생계 유지를 지원하는 이름도, 의료비나 간병비, 의료 접근성의 문제를 해소해줄 이름도 없다.
같은 조사에서 영케어러의 복지 경험 편차도 두드러졌다. 돌봄 부담을 해소할 재가나 시설 등의 돌봄 지원을 이용한 경험을 물었다. 중증질환은 50.5%, 정신질환은 53.2%만이 이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노인성 질환을 지닌 장기요양 대상자의 경우 지원 이용 경험이 86%로 나타나는 것에 견줘 현저히 낮은 수치다. 중증질환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이를 돌보는 영케어러 중 절반은 아무런 사회적 지원 없이 오롯이 혼자 돌보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낸 ‘가족돌봄청년 정책 수요 분석 및 지원사업 추진방안 연구’에도 이런 양상이 드러난다. 35살 이상 돌봄자에 견줘 34살 이하 영케어러의 돌봄서비스 수급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가족돌봄청년은 주로 중증질환자이거나 산재피해자를 돌보는 비율이 높다 보니, 제도권 내 돌봄 지원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영케어러들의 돌봄과 가사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상돌봄서비스의 실제 이용률은 2023년 2.75%, 24년 2.34%였다. 그나마 신청하려고 주민센터에 간 영케어러는 “올해 예산이 소진됐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말 그대로 유명무실이었다.
영케어러를 ‘숨은 집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재하거나, 사회적 낙인감이 숨게 되는 원인으로 꼽힌다. 찾기 힘들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음에도 정부의 대책은 광역시에 청년미래센터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넓은 광역시에 센터 하나 생기면 당연히 접근성이 떨어진다. 결국 읍면동 단위 지역사회에서, 학교나 의료기관에서 영케어러를 인식하고 먼저 손을 뻗는 수밖에 없다. 낙인감을 줄일 수 있는 호명도 중요하다. ‘가족돌봄청년’은 앞으로 계속 가족을 돌봐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기에 사용이 꺼려진다는 당사자와 사회복지 실무자들을 만난다. 더 고착화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사자들이 숨지 않을 수 있는 용어를 찾아내자.
이름이 붙여지지 못한 곳에서 고통은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이름들이 풍성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기본’에 충실한 것인지 모른다. ‘돌봄 기본사회’를 추진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에 요구한다. 정부의 영케어러 실태조사와 대책 사이 간극부터 메워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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