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고리 사라지고 키링이 남았네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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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그러다 문득 어느 교수님이 '요즈음 학생들은 키링이 원래 열쇠고리였다는 걸 알까요?'하고 말을 던진다.
영어 단어 'keyring'은 본디 열쇠고리를 뜻하는데, 한국어에서는 가방 장식품을 뜻하는 별도의 단어가 되었다.
가방에 다는 장식품인 키링은 그저 '키링'일 뿐, 더 이상 우리 머리에 열쇠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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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의 등 가방에는 키링 두 개가 걸려 있다. 학과 행사에서 퀴즈를 열심히 풀어 받은 상품이다. 걷다 보면 뒤에서 달그락잘그락 소리가 난다. 볼 때마다 귀엽고 기분이 흐뭇하다.
하루는 교수 여럿이 어울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다들 나의 키링에 '꽂혔다'. 대학생인 척하는 거냐고 놀리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어느 교수님이 '요즈음 학생들은 키링이 원래 열쇠고리였다는 걸 알까요?'하고 말을 던진다. 나 역시도 열쇠고리를 상자 가득 수집했던 추억이 있어, 내 머릿속에는 한때 정말 열심히도 모은, 그러다 어느 시절에 무심히 다 버리고 말았던, 온갖 잡다한 열쇠고리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렇다. 영어 단어 'keyring'은 본디 열쇠고리를 뜻하는데, 한국어에서는 가방 장식품을 뜻하는 별도의 단어가 되었다. 정작 '열쇠'는 우리 생활에서 거의 사라지고, 열쇠고리라는 사물은 우리에게서 잊혔다. 가방에 다는 장식품인 키링은 그저 '키링'일 뿐, 더 이상 우리 머리에 열쇠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 않는다.
한국어의 어휘 분포에서 이렇게 한자어나 외국어가 각각 서로 다른 의미를 차지하여 분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강의 중 이러한 어휘 분포의 사례를 함께 찾아보자고 하면 학생들이 기막힌 예들을 더러 찾아오곤 하는데, '파란불-녹색등-그린 라이트'는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나는 사례 중 하나다. '찬물-냉수-아이스(콜드) 워터'의 셋 사이의 관계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상황에서 쓰인다.
이들의 관계는 종종 위계적 분포를 갖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이때 한자어나 외국어가 더 대접받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예컨대 ‘미장원에서 머리 자르고 손질 좀 받았다’와 ‘헤어숍에서 헤어 커트하고 트리트먼트 받았다’의 두 문장을 읽을 때 누가 주인공이 되어 어떤 장면이 되는지 상상해 본다면 우리에게 있는 어휘 선택의 편견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외국어를 남용하면서 그 어휘가 더 고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얄팍한 됨됨이다.
그런 한편으로 뒤집어 생각해 볼 만한 것도 있다. 한국어의 어휘도 영어 사용자 사이에서 고유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권위 있고 잘 알려진 영어 사전 중 하나인 <Oxford English Dictionary(OED)>에서 ‘oppa’를 찾아보면 2009년 이후 등재된 의미로 ‘매력적이고 잘생긴 한국 남자’라는 풀이말이 있다. 앞으로 한국어 사전에 외래어 '키링'을 '가방에 걸 수 있는 인형 등의 자잘한 장식품'이라는 뜻을 별도로 매겨줄 수 있는 것처럼.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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