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문학 아카이브] 48-대전의 승병(僧兵) 유적

최화진 2025. 7. 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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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 권역으로 이른다면 크게 자치행정권, 경제생활권, 역사문화권, 자연 환경권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전의 호국 승병 유적지로는 보문산 남쪽 무수동 배나무골에 보문사가 있었고, 정생동 묘각골에 중암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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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오 (사)한국시조협회 고문
보문산 승병훈련 사찰 보문사지의 석조./사진=박헌오 고문 제공
대전을 권역으로 이른다면 크게 자치행정권, 경제생활권, 역사문화권, 자연 환경권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단순히 행정구역 경계 안에만 대전이라고 여길 수 있다.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역사 문화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1592년 제1차 금산전투에서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이 왜군에게 전멸하고, 8월 18일 제2차 금산전투에서 조헌 결사대와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이 전멸하였으며, 7월 20일 전후 우리나라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산의 이치대첩〔한산대첩, 행주대첩〕에서는 권율 장군, 황진 장군, 의병장 황박 장군이 왜군을 장쾌하게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다. 여기에 의병 대열에는 승병(僧兵)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승병은 산 속에서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나아가 싸우고자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훈련을 거듭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전의 호국 승병 유적지로는 보문산 남쪽 무수동 배나무골에 보문사가 있었고, 정생동 묘각골에 중암사가 있었다. 보문사는 보문산에서 가장 큰 절터로 남아있고, 중암사에는 5 부도와 1 대찰탑, 그리고 상암터와 초라한 암자 중암사가 남아있다. 당연히 역사유적을 복원하고 상세한 역사를 정리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박헌오 (사)한국시조협회 고문

박헌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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