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칼 대신 카메라를 든 심방” 양동규 작가를 만나다

한형진 기자 2025. 7. 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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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서 개인전 ‘희고 흰 바람’ 7월 10일~28일 개최

"양동규는 혼이 깃든 장소를 안다"

제주 시인 김수열의 평가처럼 양동규 작가는 4.3을 비롯한 제주의 아픈 역사와 상처를 사진과 영상 매체를 사용해 꾸준히 기록해왔다. 

양동규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2021년 '터'에 이어 4년 만에 열리는 '제주시점 : 희고 흰 바람'(이하 희고 흰 바람)이다. 지난 2021년 펴낸 전시도록 '제주시점'과도 맥을 닿는 이번 전시는 사진 118점, 영상 3점, 설치 2점을 통해 길게는 2017년 작품부터 올해 최신작까지 작품 세계를 한데 모아 소개하는 특별한 자리다.

전시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사진 작업물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숯 ▲이끼로 분류되는 최신 시리즈와 ▲희고 흰 ▲흰 바람 등 영상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사람이 머물던 산 속 어딘가에서 발견한 따뜻한 숯 흔적의 기억, 금속탐지기를 돌려 70여년 전의 흔적을 찾을 때 채집한 이끼, 해원상생굿이 열린 송령이골에서 소나무를 감싼 흰 천, 그리고 한라산 아미봉과 한담리 절벽, 잃어버린 다랑쉬 마을에서 마주했던 제주의 바람까지.

양동규는 제주 역사를, 자연을, 사람들을 쫓아 섬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촬영한 사진 작품 안에 마주한 것을 자신만의 감각으로 담아냈다.

제목에 담긴 '희고 흰'은 김지하 시인의 시 '흰 그늘'과 한강 작가의 소설 '흰'에서 착안하면서 희생과, 부재, 애도를 엮어내려 했다는 해석이다.
사진=제주갤러리

"그때의 빛을 오늘 다시 봤다. 같은 빛이었을 거라고 믿으며 카메라에 담았다. 애써 만든 바람은 빛을 얻게 해 준 숨이었다. 그때는 그 빛이 어떤 의미였을까? 모다들게 했던 열기를 느끼며 어떤 바람을 품었을까? 나는 그 바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겨진 사진은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사진으로나마 남겨진 빛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빛은 보이는 데 온기는 느낄 수 없다. 철학자 한병철은 '사물의 소멸'에서 "사물은 땅의 질서를 담은 암호"라고 했다. '숯과 이끼, 나무와 바람은 기억을 담은 암호'다."
- 작가 소개 글 가운데

김수열 시인은 "양동규는  혼이 깃든  장소를  안다. 동광리 무등이왓, 다랑쉬굴, 속령이골, 북받친밭……, 장소의 혼(Genius Loci)을 직감하는 작가다. 신칼 대신 카메라를 든 심방이다. 그리고 흰 바람을 아는 작가"라고 후배를 격려했다.

전시를 준비한 제주갤러리는 "양동규의 전시 '희고 흰 바람'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흐름 속에서 기억되지 못한 시간과 장소의 혼(魂)을 감지하는 것에 주목한다. 이 바람은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정치성과 슬픔 이후 남겨진 아름다움을 함께 품는다"고 소개한다.
망막을 휘감아,   202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x100cm / 사진=제주갤러리
숨은돌,   2025,   파인아트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90x60cm / 사진=제주갤러리
숯 1948-2024,   2025,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0x34cm / 사진=제주갤러리
설빛,   2025,   파인아트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34x50cm / 사진=제주갤러리
숯과 이끼,   2025,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5x109cm / 사진=제주갤러리
정방낙화,   120x8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1-2025 / 사진=제주갤러리
숯 작품 / 사진=제주갤러리
타는 숯 작품 / 사진=제주갤러리
남겨진 사물 작품 / 사진=제주갤러리
이끼 작품 / 사진=제주갤러리

전시는 10일(목)부터 28일(월)까지 열린다. 전시 개막은 10일(목) 오후 5시에 열린다. 

양동규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작가 누리집( https://edart-ydg.com/16863a6cf3df85 )

제주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41-1 인사아트센터 B1

[소개글 전문]

제주시점 '희고 흰 바람'
양동규

산에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걸었다. 조릿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서 있었을 소나무 군락을 보았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을 그들은 알고 있다. 직접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경험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꽤 오랜 시간을 산에서 보내거나 흔적을 찾아다녔던 이들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는 몸에 체화된 감각 기관을 거쳐 방향을 이끈다. 몇 번의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고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예상되는 지점에서 머물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조릿대를 살짝 걷어내고 어렴풋이 드러나 있는 돌무더기는 사각이나 타원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앙에는 두 개의 돌멩이가 있었다. 돌멩이 사이에는 꽤 오랜 시간 쌓여 있었을 낙엽이 썩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살며시 걷어내자 새까만 흙이 보였다. 새까만 흙. 제주의 흙은 까맣다. 제주의 돌도 까맣다. 그래서 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숯이라고 했다. 경험이 많은 연구원은 그곳에 숯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머물던 터의 중앙엔 두 개의 돌멩이가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숯이 있다." 많은 조사의 결과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 보았다. 산속 깊은 곳, 수십 년 동안 사람의 발이 닿지 았았던 곳에 남아있는 것은 숯이었다. 깊고 깊은 심연의 검은 숯. 

숯을 집어 들었다. 가볍다. 놀랐다. 무게의 감각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두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가벼운 무게의 까만 잔여물은 따뜻했다. 생각지도 못한 채 마주한 사물의 무게와 질감은 낯선 거리감을 만들어야 할 텐데 따뜻한 감각이라니, 가슴을 울린다. 숯은 뜨겁다. 70여 년 전엔 뜨거웠을 숯이다. 추위를 버텨낼 수 있는 온기를 만들어 낸 것이 숯이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사물의 무게와 질감이 전해준 따뜻함은 70여 년을 훌쩍 넘겨 손끝에 닿을 때까지 온기를 남겨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2023)

그것은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의식에 등록되지 않고 느껴지는 어떤 것"(브라이언 마수미, 『정동정치』)에서 오는 미시적 감각은 '충격'이었다. 충격은 사건이 되었다.

다시 산을 찾았다. 계절은 바뀌고 있었다. 주말마다 무언가를 찾아 숲을 떠도는 그들에게 산은 리추얼의 공간이었다. 감정-기억-정체성을 연결해,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300회 넘도록 반복되는 하루는 어떤 의식에 가까워져간다. 드문드문 동행하는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계절이 바뀌면 감각도 바뀐다. 드러나는 것과 숨어드는 것은 지극히 내 감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미 있던 것이, 아직도 있는 것인데 나의 감각만이 뒤늦게 지각하게 된다. 지각된 감각은 결국 의식되지 못한 마음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 마음은 또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사실 알 길이 없다. 다만 끊임없이 바라보며 사유 할 뿐. 

이끼

이끼에 시선이 머문 시점은 눈이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발길 닿는 곳에 무수히 걸리고 밟힌 것이 이끼였다. 계속 보고 만지고 했던 이끼는 한겨울 흰 밭에서 도드라졌다. 흰 것과 대비되는 초록빛 이끼는 힘이 없어 보인다. 이끼와 마주한다. 다가가 손을 올려본다. 온기가 느껴진다. 어떤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다 사그라지기 전에 전달된 온기였다. 어디였을까? 심연의 끝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던 것일까? 바다의 한숨이 바람이 되어 연결되었던 것일까? 온기는 이끼에 쌓인 눈마저 녹였다. 다시 봄이 오고 모든 생명에 숨이 더해져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때쯤 이끼 채집에 나섰다. 앞선 사람이 더 앞선 사람이 머물렀을 '터'를 발견하고 금속탐지기를 돌려 70여 년 전의 흔적을 찾을 때, 그곳에 있는 이끼를 조금 뜯어 준비해 간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조금씩. 집으로 돌아와 물에 담갔다가 다시 준비된 굵은 모래에 옮겼다. 불안했다. 버티는 것은 늘 불안하다. 그런데 이끼는 나의 불안을 안다. 매일, 잠깐의 시간 눈을 맞췄다. 때론 아내와 아이가 관심을 보냈다. 그렇게 1년이 넘게 흘렀다. 어떤 이끼는 이미 흙이 되어 갔다. 어떤 이끼는 세상 처음 같은 연둣빛을 뽐내며 일어섰다. 

"이끼와 바위는 아득한 옛날부터 대화를 했고 그 대화는 분명 시였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대륙의 이동을 노래한 시다. 그것은 '거대함과 미세함, 과거와 현재, 부드러움과 강함, 고요함과 활기, 음과 양이 접촉하는 바위 위 이끼의 변증법'이었다. 그곳에서는 물질과 영혼이 공존했다." (로빈 월 키머러, 『이끼와 함께』)

희고 흰

'송령이골 해원상생굿' 연출을 맡았다. 지난해 '한라산 아미봉 해원상생굿'에 이어 두 번째 연출이다. 이름 없는 영혼을 위한 위무의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이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름이 있지만 지워졌거나 가려져 있을 뿐이다. 송령이골은 다른 4.3유적지와는 다르다. 아직 유해가 땅속에 있다. 학살의 현장이나 피난의 현장에서 치러졌던 과거의 해원상생굿과는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유해가 발밑에 있었다. 정확히 어느 곳에 묻혀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늠만 할 뿐이다. 무엇일까? 아직 잠들어 있는 그들과 그들을 밟고 서 있는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문득 김지하 시인의 '흰 그늘'을 생각했다. 해원상생굿을 처음 시작했던 선배 예술가의 기획 의도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2002년 『다랑쉬굴 발굴 10주년 기념 현장 위령 해원상생굿』의 부제가 「살아남은 자들의 흰 그늘」이었다. 흰 그늘을 생각하며 떠올린 소설이 있다. 한강의 소설 『흰』 이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 수의" 흰 것들에 대한 목록. 그리고 해원상생굿 현장에서 많이 쓰던 하얀 천. 기저귀를 만들 때 썼던 천. 흰 것은 늘 해원상생굿판에 있었다. 

송령이골에 있는 소나무를 흰 천으로 감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희고 희게 만들고 싶었다. 흰 종이로 영혼기를 만들고, 흰 천으로 만장을 올리고, 흰 천으로 나무까마귀를 매달았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흰 것밖에 없는 것처럼 꽁꽁 싸매고, 매달고, 이었다. 흰 것이 땅속 깊이 뿌리 뻗은 나무와 나무를, 나무와 바람을 이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의 사람과 현재의 우리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이른 아침 해원상생굿은 시작됐다. 바람이 불었다. 만장 하나, 하늘 끝에 닿기 위해 애쓰는 듯 뒤틀리며 펄럭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흰 안개비가 내렸다.

슬픔인들 지쳐 끝내는 희어진다.
그럼에도 서성이는 슬픔을 응시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 거리의 흰 새벽과 마주하자.

_김시종 「희미해지는 날들」 중에서

흰 바람

바람은 끝없는 상喪의 사제다.
계절을 불러내는 바람이 바람 속을 휘몰아치고 있으니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 어느 계절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단지 바람이 가로질러 가는
공허한 틈새를 느낄 뿐이다.
(…)
바람은 
몰아치는 바람의 틈새에서 비명을 지른다.

_김시종 「바람」 중에서

바람 타는 섬에 살고 있다. 바람은 언제나 틈새에서 불어온다. 틈새기에서 불어온 바람은 귓가를 스치며 고함을 지른다.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김시종 시인이 전해준 바람의 이야기다. 

바람 부는 날, 바람을 찾아 나선 날은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는 날이다. 한라산 아미봉에서, 한담리 절벽에서, 잃어버린 다랑쉬 마을에서 바람을 맞는다. 굵은 빗줄기가 온몸을 적시고 무겁게 응축된 눈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것이 섬에 부는 바람이다. 알아듣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알아내려고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듣기 위해 한 발 더 내디뎌 본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지던 바람은 소리 없이 헐레이션 너머로 사라진다. 

어둠이 내릴 시간이다. 몇 년을 곁에 두고 지켜보던 숯을 다시 집어들었다. 열을 가한다. 다시 빛으로 살아난다. 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켜온 시간이 길어서였을까. 숯은 어렵게 열기를 뿜은 빛이 되었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좀 더 밝게 빛나는 숯을 찍기 위해 바람을 더한다. 바람이 그랬을까. 숯은 더 빨리 재가되어 흩어졌다. 숯은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은 바람이 던져올린 허공의 메아리뿐이다. 

그때의 빛을 오늘 다시 봤다. 같은 빛이었을 거라고 믿으며 카메라에 담았다. 애써 만든 바람은 빛을 얻게 해 준 숨이었다. 그때는 그 빛이 어떤 의미였을까? 모다들게 했던 열기를 느끼며 어떤 바람을 품었을까? 나는 그 바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겨진 사진은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사진으로나마 남겨진 빛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빛은 보이는 데 온기는 느낄 수 없다. 

철학자 한병철은 『사물의 소멸』에서 "사물은 땅의 질서를 담은 암호"라고 했다.

'숯과 이끼, 나무와 바람은 기억을 담은 암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