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김일성 사망 31주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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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은 김영삼(YS)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될 뻔했다.
1994년 6월 남북은 그해 7월2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후 카터는 "긴장 완화를 위해 핵무기 개발 동결이 가능하며 남북 정상회담 개최도 희망한다"는 김일성의 제안을 받아들고 판문점을 거쳐 한국에 왔다.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불과 17일 앞둔 1994년 7월8일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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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은 김영삼(YS)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될 뻔했다. 1994년 6월 남북은 그해 7월25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전격 합의했다. 회담에 앞서 7월1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 대표 접촉에선 아주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됐다. YS와 김일성이 배석자 없이 최소 두 차례 단독 회담을 갖는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한국은 현장 생중계를 위한 방송 차량 및 요원의 파견을 요청했다. 반면 북한은 녹화 후 며칠 뒤에 보도하면 되지 굳이 생방송을 해야 하느냐며 어깃장을 놓았다.

당시 미국은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었다. 대북 강경파는 공습을 통한 북한 핵 시설 초토화를 주장했다. 얼마 전 미 공군이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이란 핵 시설을 파괴한 것처럼 말이다. 진보 성향의 클린턴 대통령은 주저했다. 그러는 사이 같은 민주당 소속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1977년 1월∼1981년 1월 재임)이 1994년 6월15일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이후 카터는 “긴장 완화를 위해 핵무기 개발 동결이 가능하며 남북 정상회담 개최도 희망한다”는 김일성의 제안을 받아들고 판문점을 거쳐 한국에 왔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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