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왜곡 논란, 넷플릭스 문법 때문?

이상원 기자 2025. 7. 2. 08:1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은 괜찮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원작 팬덤은 드라마의 각색이 주제 의식을 훼손한다고 비판한다. K드라마 산업의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넷플릭스 제공

6월6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광장〉은 특이한 작품이다. 지표상 인기는 높은데 전문가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예의 ‘대중과 평단의 대립’ 구도는 아니다. 다수 시청자의 평가 또한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다. 온라인상에는 논란이 벌어진다. 이 드라마가 원작 웹툰보다 수준이 낮고, 나아가 원작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각색의 탈선’을 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제시하는 어떤 모범을 따른다. 그렇게 성공했고, 그래서 불길하다.

〈광장〉은 ‘액션 드라마’ ‘복수극’ ‘갱스터물’ 정도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국내 관객에게는 ‘주인공 소지섭’도 와닿을 수 있겠다. 과묵하지만 인간적인 깡패가, 잔인한 방식으로 가족의 복수를 해내는 드라마다. 국산 폭력물에 익숙한 이라면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전반적 분위기는 영화 〈신세계〉(2013)와 비슷하다. 전개는 〈해바라기〉(2006)와 닮았다. 캐릭터와 액션은 〈아저씨〉(2010)가 떠오르게 한다. 이들 작품처럼 〈광장〉 역시 원초적 쾌감을 자극하는 흡인력이 있다. 심오한 예술적 지향이나 날카로운 사회 비판까지 건지기는 어렵다.

인기는 높은 편이다. 6월17일 기준 〈광장〉의 전 세계 시청지수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7위다(OTT 집계 업체 플릭스패트롤). 비영어권 작품 중에선 6월 첫째 주 2위, 둘째 주 세계 1위를 차지했다(넷플릭스 공식 발표). 국내에서는 공개 직후부터 꾸준히 1, 2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에서 부동의 1위이고, 독일·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꾸준히 10위권에 든다. 근래 한국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가 모두 이 정도 성적을 거둔 건 아니다. 큰 제작비를 들이고도 세계 무대에서 뜻밖의 고배를 마신 사례가 적지 않다. 통계만 놓고 보면 〈광장〉의 성과는 고무적이라 볼 법도 하다.

그런데 외신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한국판 〈존 윅〉” “완벽한 칼싸움” 등 액션에 대한 칭찬은 많다. 반면 앙상한 ‘이야기’가 지적받는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지 않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콜라이더〉)” “놀라울 정도로 서사의 깊이가 없다. 조직의 사업과 권력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오가는데 정작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리뷰기크〉)” 같은 평이 나왔다. 그간 ‘K드라마’ 전반에 대한 세계의 평가와는 퍽 다르다. 〈오징어 게임〉 〈킹덤〉 등 여태까지 흥행해온 한국 드라마는 인간성과 서사를 놓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선혈이 낭자한 상황이나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면서도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게 ‘K장르물’의 특성으로 꼽혔다.

원작 팬덤이 반발하는 것도 ‘주제 의식 훼손’이다. 드라마 줄거리는 웹툰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드라마에서 새로 만든 인물이 활약하는 후반부에는 ‘두 조직과 주인공 형제의 갈등’이라는 골조 외에 웹툰과 겹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 웹툰에서 비중이 큰 ‘광장 전투’ 장면은 통으로 덜어냈다. 그 결과 인물의 행동 동기나 후반부 이야기 전개가 모조리 바뀌었다. 일부 원작 팬은 “사실상 이름만 따간 다른 작품”이라고 평한다.

‘광장 전투 생략’ 이상으로 원작 훼손 논란이 이는 대목은 주인공의 싸움 방식 차이다. 웹툰 〈광장〉 주인공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상대의 성기를 잡아 뜯고 눈부터 찌른다. 그렇게 쓰러트린 사람을 무기로 다시 가격한다. 상대방을 확실하게 제압하고 남은 적에게도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다. 반면 소지섭이 연기한 드라마 주인공은 정공법만 고수하면서도 그저 ‘강해서’ 이긴다. 최성은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리얼리티를 위해서라고 했다. “뜨내기들과 싸울 때는 겁을 줘서 덤벼들지 않게 하는 싸움 방식이 통할 테지만, 실력자와 붙을 땐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각색 탓에 드라마의 전투는 웹툰보다 더 ‘만화적’으로 변했다. 주먹 한 방에 거구의 깡패들이 족족 나가떨어진다. ‘처절한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힘’ ‘누구나 예외 없이 느끼는 공포’와 같은 원작의 핵심 주제는 사라졌다.

원작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려는 창작자의 욕심이 원작을 망쳤다고 비판한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2022)을 비롯해, 웹툰·웹소설 원작 드라마 전반이 겪은 논란이다. 해외에서는 〈스타워즈〉 시퀄, 〈왕좌의 게임〉 막바지 시즌도 같은 비판을 마주한 바 있다. 그러나 〈광장〉 논란은 이들과 사뭇 다르다. 개성을 드러내려는 각색자보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추구하는 바와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최근 넷플릭스 액션 드라마의 특징이 “복잡한 서사는 없애고 액션 연출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관객의 ‘일반적’ 취향에 맞춘 경향이며, 〈광장〉 역시 이 취지에 발맞춘 드라마라고 했다. 물론 수십 년간 이어온 할리우드 액션물의 문법과는 차별점을 둔다. 가령 총격전이 아니라 칼싸움, 야구 방망이를 동원한 전투가 해외 관객에게는 특별한 볼거리다. 그러나 “큰 틀에서는 누가 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이 넷플릭스의 지향”이라고 정 평론가는 말했다.

네이버웹툰 <광장>의 장면.ⓒ네이버웹툰 갈무리

팬덤의 반발과 달리 원작의 ‘야비한 싸움’을 제거한 것도 창작자의 “예술병”이나 “자아실현” 탓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OTT 자본이 추구하는 바만 따라가도 설명이 된다. 악랄하게 행동하는 주인공은 다수 관객이 몰입하기 어렵다. 같은 폭력 행위도 영상으로 구현하면 더 적나라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덕현 평론가의 말이다. “드라마란 매체는 ‘주인공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라는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관객 중 원작처럼 야비하게 싸우는 주인공에게 열광할 이가 과연 얼마나 많을까? 웹툰과 드라마 소비자 간에는 근원적 차이가 있다.”

오히려 원작 〈광장〉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각색이야말로 거대한 야망이다. 말하자면 각색자는, ‘직업 깡패’조차 질리게 할 정도로 극악무도하면서도 관객을 거북하게 여기지 않을 만한 인물을, 절묘한 줄타기를 통해 연출해내야 한다. 이것은 넷플릭스가 각색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니다. 애초 OTT가 원작을 사들이는 주요 동기는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검증된 흥행 작가를 기용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보다, 이미 인기를 얻은 원작의 판권을 사고 상대적으로 무명인 각색팀을 고용하는 게 비용 절감에 유리하고 위험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광장〉 각본가들 역시 히트작을 여럿 낸 스타 작가는 아니다.

드라마 〈광장〉의 ‘적당한 흥행’은 양면적 교훈을 남긴다. 이제 한국 드라마는 미국식 ‘양산형 액션물’의 문법만 따라도 꽤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이 정도 질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국가는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이 성공은, 장기적으로 〈오징어 게임〉과 같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메가 히트작의 출현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다. K드라마 특유의 강점이라 꼽히던 덕목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해외시장 없이 생존하기 어렵고, 비(非)할리우드 작품은 무언가 다르지 않으면 세계에서 외면받는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온라인에 머무르는 일부 웹툰 마니아의 투덜거림으로만 치부하고 넘기기가 어렵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