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차별이 본질적 자유권이라는 총리 후보 [홍성수 칼럼]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 지난주 인사청문회를 마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말이다. 동성혼을 도입한 나라 중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된 나라가 전무하다는 사실로 간단히 반박되는,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2001년 네덜란드를 필두로, 38개국에서 동성혼이 이미 법제화되었지만, 이들 국가 중 한국보다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없다. 동물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책 ‘생물학적 풍요’에는 450여종 동물의 동성애 사례가 나온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에서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동성애 때문에 멸종한 동물은 없었다. 김 후보자는 차별금지법 찬성·반대를 둘 다 “절박한 목소리”이자, “본질적인 헌법적 권리이자 자유권”으로 간주했다. 의견 대립이 있으니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일견 공정하고 신중해 보이지만, 결국 차별을 용인하자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반대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표현 자체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다만 고용이나 교육 등의 영역에서 적대적, 위협적 환경을 조성하거나 모욕감, 두려움을 준다면 괴롭힘에 해당하며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즉,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성애자를 괴롭힘으로써 노동권과 교육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괴롭힐 자유를 인정해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쪽에서는 노동권과 교육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괴롭힐 자유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 둘이 모두 ‘절박한 목소리’이자 ‘본질적 자유’니까,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과연 공정한 처사일까?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말 그대로 ‘절박한’ 생존권의 문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중 스트레스, 우울증, 친구와 사이가 멀어졌다는 응답이 절반이 넘었고, 학습 의욕 저하가 46.2%,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무려 19.4%였다. 성인 성소수자 중 41.7%의 응답자가 직장 내에서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한 따돌림, 협박, 조롱, 폭력, 성희롱 등의 문제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괴롭힐 자유를 달라는 것과 비교가 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정말 절박한 목소리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국교가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국가이며(헌법 제20조 제2항), 공무원은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 제1항). 국무총리가 되겠다는 사람이 특정 종교의 신념을 ‘본질적 자유’라면서 괴롭힐 자유를 주장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국정을 총괄할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내내 어느 국회의원도 이 문제를 질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의 한 구절을 읽으며, 신앙심으로 역경을 이겨낸 총리 후보자를 치켜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과 9개월 전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대조적이다. 민주당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서, “편향된 세계관과 종교관”, “편견과 종교적 신념을 앞세우며 논쟁적 사안인 것처럼 사실을 호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의 자유를 허용하자는 주장” 등을 이유로 들었다. 편향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가 인권위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국무총리가 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인가?
최근 들어서는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차별금지에 관련된 모든 입법과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특정 종교의 신념이 국정 전반과 현실 정치에서 광범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기독교계에서 동성애 혐오가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주류 장로교가 동성애에 포용적인 입장을 취한 지는 이미 십수년 전 일이고, 지난달에는 미국 주류 감리교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기독교적 전통으로 만들어진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나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으며 취임하는 미국에서는 동성혼이 허용되어 있다.
윤석열 퇴진을 위한 광장에서는 성소수자들이 맹활약하며, “윤석열도 없지만 성소수자 차별도 없는 사회”를 외쳤다.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선 사회대개혁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채택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채택해달라며 1만명이 넘는 이들의 서명을 받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새 정부의 응답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국무총리를 지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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