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땅 아래의 새로운 세상, 벙커버스터와 흰 개미집

최근 외신은 이란의 지하 핵시설이 미국의 '벙커버스터'라는 폭탄에 의해 공격받았다는 소식과 그 결과가 어땠는가로 시끄럽다. 벙커버스터는 말 그대로 단단한 지층을 뚫고 들어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군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이 사건은 현대 사회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지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가지게 된다. 인류는 왜 이토록 깊은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일까? 건축적으로는 깊고 어두운 공간, '지하 구조물'의 역사와 가치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
인류가 지하 공간을 활용한 역사는 인류의 문명사와 함께 한다. 농경 이전의 인류에게 혹은 중세의 사람들에게 땅속은 가장 안전한 쉼터였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에 있는 거대한 지하 도시는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의 간절한 생존의 공간이었으며,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환기구, 주방, 교회, 무덤까지 갖춘 완벽한 지하 도시였다.
이는 외부의 위협과 혹독한 기후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처절하고도 고도의 건축 행위였다. 전쟁의 역사 또한 지하 공간과 궤를 같이한다. 적의 눈을 피해 병력과 물자를 숨기고 기습을 감행하기 위한 군사 땅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효과적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현대에 이르러 지하 공간의 의미는 과거의 지혜가 미래의 대안이 되듯, 현대의 지하는 포화상태에 이른 도시의 한계를 극복하는 현실적 '해결책'이 되고 있다. 서울의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은 지하가 더 이상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문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개방적인 '도시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었다. 서울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한남-양재 구간의 '지하화' 계획은 단순한 지하차도가 아닌 수십 년간의 도시의 단절을 치유하는 거대한 도시 수술이다. 그 위로 들어서는 축구장 60개가 넘는 거대한 복합문화공간은 지하가 만들어 내는 재창조다.
과거 냉전 시대의 '여의도 비밀벙커'는 시민을 위한 예술 공간(SeMA 벙커)으로,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던 '광명동굴'은 문화예술 명소로 재탄생돼 지하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 도시의 혈관처럼 뻗어 나가는 지하 전력 및 통신망, 거대한 지하 주차장과 쇼핑몰 등은 이제 도시 기능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지하 공간은 비단 현실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지하는 종종 미지의 세계, 혹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상징하는 무대가 되곤 했다.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Inferno)'은 문학적 지하 구조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단테가 그려낸 지옥은 단순히 뜨거운 불지옥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나선형으로 파고드는 아홉 개의 나선원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건축물이다. 각 원은 죄의 경중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획돼 있으며, 그 구조 자체가 신의 심판과 질서를 상징한다. 이는 인간이 '아래'라는 방향성에 부여해 온 어둠, 미지, 심판, 근원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시각화한 탁월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지하공간을 삶에 적용한 놀라운 예가 있다. 흰개미다. 아프리카 초원에 우뚝 솟은 거대한 흰개미집은 높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건축의 진정한 위대함은 땅 위가 아닌 땅속에 있다. 흰개미집의 지상 구조물은 사실 거대한 환기통로인 굴뚝에 불과하다. 수백만 마리의 개미가 살아가는 본체는 지하에 있으며, 지상의 탑과 연결된 수많은 미세한 터널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고 내부의 더운 공기는 자연적인 대류 현상으로 배출된다.
인류는 생존과 효율을 위해 땅을 팠고 상상 속에서 땅 아래 세상을 그렸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흰개미에게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영감을 얻고 있다. 하늘을 향한 인간의 기술력과 욕망이 마천루라면 조용히 발 밑을 파고드는 지하 공간은 우리의 지혜와 성찰,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배려의 건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답의 일부는, 저 멀리 우주가 아닌 바로 우리 발 밑의 깊은 세상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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