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조정에 또 ‘도덕적 해이’ 낙인…“신용불량자 일자리 못 구해 악순환”

조해영 기자 2025. 7. 2.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빚을 줄여주는 정책을 욕하는 것도 이해되고, 나도 내가 빌린 돈이니까 스스로 갚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충남 보령에 사는 김아무개(45)씨는 20여년을 빚 독촉에 시달렸다.

카드 사태 때 빚을 진 김씨는 "신용불량자 신분이었던데다 당뇨와 만성췌장염 등 건강도 좋지 않아 지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일을 해서 돈을 갚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아무개(72)씨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낸 빚을 갚느라, 다양한 일을 끝없이 해야 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 붙은 대출 광고.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빚을 줄여주는 정책을 욕하는 것도 이해되고, 나도 내가 빌린 돈이니까 스스로 갚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충남 보령에 사는 김아무개(45)씨는 20여년을 빚 독촉에 시달렸다. 20대 초반 의욕을 가지고 시작한 장사가 화근이었다. 동네 강아지도 신용카드 한장씩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2003년 카드 사태 때 ‘신용불량자’(공식 명칭은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다. 건강 악화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7년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빚 독촉은 이어졌다. 지난한 20년을 겪은 김씨 꿈은 크지 않다. 그는 1일 한겨레에 “빚 독촉 전화 안 오는 삶, 남들처럼 평범한 삶,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새 정부가 장기연체 채무자의 빚을 조정해주는 프로그램(배드뱅크)을 추진하자, 한쪽에서는 ‘도덕적 해이’ 우려가 고개들 들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 채무에 시달려온 당사자들은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굴레를 호소한다. 빚 조정 정책을 개인에 대한 지원을 넘어 외환위기, 카드 사태, 코로나19 등 경제 위기의 긴 여파를 해소하는 사회적 대책으로 봐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도 이어진다.

정부가 제시한 배드뱅크 정책은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원 이하의 개인 무담보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일괄 매입해, 채무자의 소득·재산 심사를 거쳐 원금 일부를 감면하거나 전부 없애주는 방식이다. 수혜 인원은 113만4천명으로, 여기에 필요한 나랏돈 4천억원은 국회가 심사 중인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됐다.

야당 반발은 작지 않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배드뱅크 정책은) 도덕적 해이를 사회 전반에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상훈 의원도 “도박 빚, 유흥비 (갚아준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한겨레에 사정을 전한 장기채무자들은 경제활동 자체가 쉽지 않았던 상황을 토로했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순간 일을 해서 돈을 갚기 한층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카드 사태 때 빚을 진 김씨는 “신용불량자 신분이었던데다 당뇨와 만성췌장염 등 건강도 좋지 않아 지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 외에 제대로 된 일을 해서 돈을 갚기 어려웠다”고 했다. 국회 정무위도 2차 추경 예산을 검토한 보고서에서 배드뱅크 정책에 대해 “장기채무를 보유한 연체자들은 신규 대출 불가, 신용카드 사용 제한 등 금융거래상 심각한 제약이 따를 뿐만 아니라 근로활동, 주거생활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전반에 있어 곤경에 처한 경우가 다수”라고 정책 필요성을 짚었다.

빚을 떠안게 된 계기가 대부분 ‘경제 위기’라는 점에서 그 여파를 해소하는 정책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김아무개(72)씨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낸 빚을 갚느라, 다양한 일을 끝없이 해야 했다. 그는 “이 일 저 일을 해서 내 빚은 이제야 갚아가는데 형편이 어려워 아들이 빚을 얻어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아들이 자기 명의로 휴대전화 하나 못 만드는 삶에서 빠져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경제 위기가 빚을 고리로 수십년째 가족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 전반을 짓누른 셈이다.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 ‘롤링주빌리’의 유순덕 상임이사는 “채무조정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만약 채무조정을 해주지 않아 신용 회복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득활동도 할 수 없고 세금도 낼 수 없다.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면 (오히려 채무조정보다) 더 많은 세금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