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빛과 어둠의 오랜 기술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5. 7. 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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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햇볕이 따가워지고 나도 모르게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다. 태양빛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을 잘 다룰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인류문명의 주요 과제가 됐다. 건물의 벽이나 가림막으로 강한 빛을 막고 창문이나 얇은 천으로는 빛을 투과하는 것은 일상에서 빛을 제어하는 오랜 방법들이다. 실외에서 실내로, 또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빛이 통과할 때 일어나는 '카메라 옵스큐라'(외부의 이미지가 어두운 방 안쪽에 상으로 맺히는 현상)에 관한 기록이 기원전부터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다.

빛이 어둠과 만나며 이미지를 그려내는 과정에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세 이후 발달한 광학의 역사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17세기 데카르트의 굴절광학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반사광학은 빛과 어둠의 문턱에 특별한 유리, 즉 렌즈와 거울을 사용해 다양한 실험을 수행했다. 렌즈는 굴절작용을 통해 상을 조절하고 거울은 반사작용을 통해 이미지를 이동하는데 그 두 작용의 지향점은 사뭇 대조적이다.

렌즈는 기본적으로 빛을 통과시키며 확대하거나(볼록렌즈) 거꾸로 맺힌 상을 바로잡음(오목렌즈)으로써 대상을 '더 잘 보게' 하는데 사용된다. 갈릴레이가 만든 천체망원경처럼 렌즈를 통해 꿰뚫어보는 빛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는 과학의 목표에 복무한다. 반면 거울은 시선을 통과시키지 않고 표면에 맺힌 이미지에 머물게 하는데 거울이미지는 다른 기원으로부터의 상을 이질적인 배경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실제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환영들을 만들어낸다. 이는 오늘날 눈속임(trick-eye) 박물관이나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 같은 곳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데 다리 부분에 교묘히 숨긴 거울 때문에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탁자라든가 전신거울의 얼굴 부분에 괴물의 이미지를 비춰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어트랙션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망원경 같지만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이미지들이 맺히는 요지경(만화경) 같은 오락거리도 대표적인 반사광학의 산물이다.

18세기에는 그림에 인공적인 빛을 통과시켜 벽이나 스크린에 투사하는 환등기(magic lantern)가 등장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로베르송의 '판타스마고리아'다. 랜턴의 불빛 앞에서 유리판 그림을 움직이면 공중에서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환등상)가 투사된다. 이는 렌즈와 굴절, 반사되는 빛의 성질을 활용한 원시적 영사(projector) 기술이지만 '환영'이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환등기는 대부분 광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대중을 현혹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영역보다는 신비주의 활동 영역에 속한다. 주술사나 영매 같은 사람들이 정령(천사나 악마)이나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며 사용한 소수만을 위한 기술인 것이다.

19세기 말 영화의 시발점이 되는 시네마토그래프는 카메라이자 영사기였는데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대중이 무지와 신비주의로부터 탈피해 합리적 지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시네마토그래프로 만들어진 영화는 곧바로 이야기를 결합했다. 이전 장치들과 달리 현실을 헷갈리게 하는 순간적 눈속임이 아니라 현실의 이미지로부터 개연성 있는 허구를 창조하는 지적 활동을 결합하며 기존 예술에 존재하던 계급의 벽마저 허물어버렸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모두 같은 입장료를 내고 같은 극장에 앉아 직관과 논리가 잘 버무려진 영화서사를 감상하게 된 것이다.

요즘 AI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그저 순간적 오락에 머문다는 비판이 많다. 하지만 언젠가는 AI 예술도 새로운 빛을 나누는 평등한 감각을 리드할 수 있길 기대한다. 그러고 보니 영화계에서는 항상 여름이 성수기였다. 시원한 극장에 가고 싶은 날이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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