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감성 너머의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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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기를 끈 주제는 '대만'이었다.
'대만감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설과 시집, 독립출판물, 그림책과 에세이, 감각적인 북디자인을 선보였다.
관람객은 '대만감성'에서 유독 오래 머물렀다.
많은 언론이 "'대만감성'이 서울을 사로잡았다"며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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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기를 끈 주제는 '대만'이었다. 올해 주빈으로 대만이 초청되면서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대만 출판물을 만날 수 있었다. '대만감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설과 시집, 독립출판물, 그림책과 에세이, 감각적인 북디자인을 선보였다. 관람객은 '대만감성'에서 유독 오래 머물렀다.
많은 언론이 "'대만감성'이 서울을 사로잡았다"며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천쓰훙, 우밍이, 장자샹, 양솽쯔, 궈창성, 찬쉐, 린롄언 등 내로라하는 대만의 작가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독자들과 만났다. 이들은 오늘의 대만을 만들어온 복잡한 현대사를 바탕으로 역사와 퀴어, 대중과 유머를 뒤섞으면서 '대만감성'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 이른바 '대만감성'은 이제 독특한 문화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예컨대 천쓰훙은 '귀신들의 땅'에서 저마다 비밀을 품고 사는 천씨 가족의 삶을 그린다. 가부장제의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아들들의 역사는 대만 현대사의 고통과 겹친다.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는 자전거를 통해 아버지의 역사를 만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세밀한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려낸다. 양솽쯔의 '대만 만유록'은 식민지 대만의 역사와 여성 동성애자의 삶을 통해 미묘한 감정의 서사를 펼친다.
이런 서사를 통해 발산되는 '대만감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낡은 활자와 필름사진, 느린 리듬, 손글씨 간판, 레트로한 거리, 감정의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생활감각이다. 대만의 독립서점이 보여주는 큐레이션 철학, 골목마다 다른 감성의 책방, 일상에 스며든 문학적 표현이 '회복'과 '치유'라는 정서의 언어로 한국의 청년을 불러모은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가 이해하는 대만은 어떤 곳인가. 우리에게 대만은 역사로 다가오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미지로 소비되는가. '대만감성'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만 때로는 타자에 대한 이해를 감정적으로 환원하는 위험도 내포한다. 대만이 겪은 독특한 역사와 정치·문화의 맥락이 자칫하면 감성이라는 이미지에 밀려나기 쉽다.
대만은 단지 '감성의 땅'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전략적인 위치를 점유한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고립 상태에 놓인 대만은 도서전, 영화제, 출판·전시 등을 통해 자신을 재현하고 접속하는 방식을 선책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문학, 출판, 디자인을 통합한 일종의 문화외교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획은 대만의 감성적 자원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설계하고 투명하게 전달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메시지를 어떻게 수용하느냐다. 지금 대만을 향한 관심은 분명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감성에 머무르는 수용은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문화를 '나의 정서적 피로'를 달래기 위한 장치로 삼을 위험도 존재한다. 실제로 '대만감성'을 말하는 많은 콘텐츠는 대만의 정치현실이나 사회적 갈등, 문화 내부의 긴장보다는 정제된 정서와 낭만적 이미지에 집중한다. 이는 문화적 접촉보다는 이미지 소비에 가깝다.
그래서 "감성은 정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타자의 감성을 존중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감성을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하거나 나의 욕망에 맞춰 조작하는 순간 우리는 타자를 소외시키고 만다.
문화의 교류는 감성의 일치를 넘어서 맥락의 이해로 나아가야만 한다. 서울국제도서전이 남긴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지금 대만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대만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는가. '대만감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감성 너머를 보려는 상상력이 없이는 우리는 여전히 타자를 나의 거울로만 소비하는지 모른다.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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