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오리너구리가 어때서

이인경 울산다문화교육지원센터 장학사 2025. 7.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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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행사서 동화구연 위해 준비한 도서
세 등장인물 다양성 없이 이분법으로 나눠
다름 인정하고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야
이인경 울산다문화교육지원센터 장학사

 첫 어울림 교실이 있었던 날이다.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어울림 행사를 담당한 주무관은 당황했다. 오리너구리가 발단이었다. 

 소동의 전말은 이러하다.

 우리 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는 어울림 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문화사회 전문 강사들(이주배경 학부모들)이 센터를 방문한 학생들에게 출신국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체험하는 문화 행사이다. 학급 단위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어 수준이 다르고 출신국 언어가 다른 이주민 선생님들이 한국어로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능수능란하게 학생들을 이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돼 깜짝 놀랄 정도이다.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골라준 책으로 동화구연을 하고 외국어로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소동은 이 책 때문이었다. 동화책을 출신국 언어로 읽어주기 위해서 미리 집에서 준비하던 이주배경 선생님이 책 내용이 이상해서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러지? 도서관에 독서 전문가들이 행사 성격과 눈높이에 맞춰서 추천해준 책인데…. 나도 그림책을 살펴보았다. 시작은 이러했다. 오리너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원하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도시에는 오리 옷, 너구리 옷은 있어도 오리너구리를 위한 옷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너구리는 고래상어와 함께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계속 된다.

 마음먹고 찾으면 보이는 작은 아쉬움은 있었지만, 화합을 말하는 무난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고른 도서관 선생님들의 좋은 뜻도 이해가 됐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와닿았다.

 뭐가 문제지? 나는 나름 다문화 감수성이 높다고 자부하는 1인이다. 오랜 기간 다문화교육 업무를 담당했고 다문화 교육 연구자로서 몸에 밴 민감성이 있다. 그런데도 이주배경 선생님들이 이 책이 왜 이상하다고 하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행사를 담당한 주무관은 도서관 선생님에게 재빠르게 연락하고 다른 책을 추천받아 동화 구연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행사 후 점심시간마다 그 책을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이주배경 선생님들이 유난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또 읽어보았다. 반복 학습의 효과일까.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전제가 문제였다. 오리너구리가 나타내는 '섞임'과 오리 또는 너구리로 대변되는 소위 '섞이지 않음'의 이분법이 이야기에 전제돼 있었다. 오리와 너구리를 한 묶음으로 묶고 오리너구리를 다른 묶음으로 해서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눠야 성립되는 이야기였다. '오리, 너구리, 오리너구리'가 세 등장인물이 각각 완전하고 서로 다른 다양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 게 아니었다. 세 동물 모두 서로 다른 공평한 존재인데도 말이다.  

 며칠 뒤 이주민 선생님에게 '책을 여러 번 읽고 나니 오리너구리로 대변되는 섞임과 섞이지 않음이라는 이분법이 보이더라'고 말을 걸었다. '바로 그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시각이 너무나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다문화 교육은 선주민(먼저 정착한 주민, 이주민의 반대개념)과 이주민이 다름을 인정하며 사회통합을 이루어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자는 사회운동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이주민-선주민의 이분법인 것이다. 통합을 논하기 위해 먼저 분리부터 해야하는 것이다. 

   이 소동으로 학문 세계가 아닌 생활에서 가져야 할 시각은 달라야한다는 깨우침이 왔다. 다문화 교육의 지향점은 서로 다른 모든 존재 한 명 한 명이 공정한 방식으로 충만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주배경학생-비이주배경학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든 개인'의 연대, 그것이 다문화 교육인 것이다. 오리너구리한테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