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프레임 밖 청춘

토요일 밤, 성수동은 빛으로 가득하다. 네온사인과 가게 불빛, 그리고 스마트폰 플래시가 거리를 수놓는다. 유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 앞에는 아침부터 청년들이 줄을 선다. 한정판 굿즈를 손에 쥐고 포토 존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 카페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길, 오후가 되면 편집숍과 갤러리 앞에 모여드는 인파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포장마차에서 맥주잔이 부딪히고 자정이 지나도 편의점 앞 대화는 끝날 줄 모른다. 이곳은 지금, K-한류가 문화와 기술, 패션, 창업, 정치 담론까지 세계의 기준이 되어가는 현장이다. 그러나 이 찬란한 풍경의 이면에는 어둠처럼 드리운 질문 하나가 있다.
"이 삶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면접을 마치고 누군가는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이 거리를 걷는다. 겉으론 활기차 보이지만 그 속엔 계산과 고민, 조용한 꿈이 있다. 청년들은 '꿈이 없는 세대'가 아니다. 다만 꿈을 실현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 문은 더 좁아지고 일자리가 있어도 서울에서 자립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듯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은 더 이상 약속이 아니다. 주거는 벗어날 수 없는 덫이 되고 노동은 생존의 조건이 되었으며 교육은 여전히 경쟁의 장이다. 정치는 청년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기술은 오히려 더 빠르게 청년을 밀어낸다. 나 역시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첫 취업에서 정규직 대신 계약직을 택했을 때 처음엔 안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불안정하더라도 자기 삶을 주도하고 타인의 기대보다 자기만의 균형을 중시하는 선택이 지금 세대의 방식임을 말이다.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에 제안한다. 이제는 청년을 '정책의 손님'이 아니라 '변화의 주연'으로 세워야 한다. 청년이 직접 정책을 설계하고 제안하며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단지 의견을 듣는 자문 기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책의 방향을 이끄는 시스템,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방식'이다. 성수동이든 신촌이든, 24시간 열려 있는 공간에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수치가 아니라 눈빛과 말투에서 정책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들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어야 한다. 늘 강조해왔듯 '경험은 나이 들지 않는다'. 실패는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여는 일이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 창업가, 프리랜서, 비정규직까지 다양한 청년 집단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며 그들의 언어와 현실에 맞는 정책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시대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참견'이 아니라 '신뢰'다. 도움을 주되, 삶을 통제하지 않는 것, 권한을 부여하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국가는 청년이 직접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는 그 길이 막히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 골목을 걷다 문을 닫은 편집숍 앞에 멈췄다. 안쪽 조명 아래 마감 정리에 분주한 직원 뒤로 유리창 너머 전시된 신발과 가방을 바라보는 한 청년이 조용히 서 있었다. 안과 밖의 거리, 전시된 물건과 청년의 눈빛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 있었다. 그는 주변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았고 지친 얼굴로 오늘 하루를 건너온 수많은 청년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예전에 어느 지자체에서 내걸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간결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지금 이 시대 청년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식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권한은 주되, 불필요한 개입은 삼가고, 자율성과 신뢰를 주는 것, 그 기본에서 청년정책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매장 안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그 청년의 모습처럼 이 땅의 청년들도 그렇게 조용히 견디고 버텨내고 있다. 누군가는 오늘 하루를 '인생네컷'처럼 포장해 웃고 있지만 그 네 컷은 찰나의 표정일 뿐이다. 프레임 밖, 박스를 나서며 마주하는 고단한 현실은 아무도 찍어주지 않는다. 그 순간들을 기록할 카메라도, 함께 나눌 공간도 없이 그들은 오늘도 조용히 각자의 자리로 흩어질 뿐이다. 정치도, 정부도 이제는 그 조용한 움직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문득 어느 선배의 18번이기도 한,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안치환의 노래 '오늘이 좋다'라는 곡이 있다.
"술 한잔에 해가 지고 또 한잔에 달이 뜨니 너와 나의 청춘도 지는구나 잘난 놈은 잘난대로 못난 놈은 못난대로 모두 녹여 하나 되어 마시자"
청년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먼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쪽은 바로 '우리 사회'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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