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강남역에 예산 들여 금연구역 설치… 옆 골목으로 옮겨간 흡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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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토끼굴'에 흡연을 막고 나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립니다.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경고문을 여러 장 붙여놨는데 아무 소용없어요."
인근 건물 관리인 A씨는 "그 예산 들여 토끼굴을 꾸미지 말고 주변에 흡연 부스 하나만 만들어 줬으면 이렇게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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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에 예산 낭비 아닌가” 지적도

“바로 옆 ‘토끼굴’에 흡연을 막고 나니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죄다 이쪽으로 몰립니다.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경고문을 여러 장 붙여놨는데 아무 소용없어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서울 강남구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한 건물 앞에서 만난 관리인 A씨가 한 말이다. 예산을 들여 ‘상습 흡연’ 골목을 산뜻한 분위기의 금연 골목으로 바꿨더니, 흡연자들이 바로 옆 골목으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예상됐던 풍선효과가 실제로 일어난 것” “탁상행정에 예산을 낭비한 것 아닌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

◇흡연자 몰리던 강남역 ‘토끼굴’… 예산 들여 금연 공간으로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나와 20m쯤 떨어진 두 건물 사이 폭 3m 정도의 좁은 골목은 ‘토끼굴’로 불려왔다. 강남역에서 나와 음식점이나 주점으로 이동하는 통로로 유동인구 유입이 많은 곳으로, 오래전부터 흡연자들이 몰렸다. 강남역 일대에서는 대로변만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고, 건물 사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강남구는 ‘토끼굴’에 흡연자들이 몰려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민원이 자주 제기되자 환경 정비 사업을 벌였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흰 토끼의 신비한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초록색 인조 나뭇잎이 벽면에 수직으로 물결을 치며 붙어 있다. 흰색 토끼가 벽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도 설치됐다.
강남대로 일대 환경 개선 사업에 서울시 5억원, 강남구 15억원 등 총 20억원의 예산이 들었고, 토끼굴 골목 개선에는 1억원이 투입됐다. 골목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금연 안내문도 곳곳에 붙어 있다. 그 덕에 지난달 30일 오전 11시쯤부터 1시간 동안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바닥에도 꽁초가 없었다.

◇인근 골목으로 흡연자 옮겨가는 ‘풍선 효과’ 발생… 시민들 “이럴 줄 몰랐나”
하지만 강남역 일대 길거리 흡연은 사라지지 않았다. 토끼굴 옆 골목으로 흡연자들이 옮겨가며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쯤 강남역 11번 출구에 더 가까운 골목에서 행인 5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흡연 금지’ ‘흡연 절대 금지’ 등의 경고문이 5개 붙어 있었지만 그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토끼굴’이 시작하는 입구 주변에서도 동시에 5명이 흡연 중이었다. 건물 관리인들이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됩니다”라고 제지했지만, 3분 만에 새로운 흡연자가 나타났다. 빗물 배수구에는 버려진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행인들은 담배 연기 때문에 코를 막으며 지나갔다. 강모(37)씨는 “토끼굴 공사 전이나 후나 담배 냄새는 똑같이 난다”며 “오히려 담배 냄새가 나는 지역이 넓어졌다. 이럴 줄 몰랐나”라고 했다.

◇흡연자 “돈 들여 토끼굴 꾸미지 말고 흡연 부스 만들어 줬더라면”
흡연자들은 ‘근처에 담배를 피울 곳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직장인 최모(27)씨는 “강남역 일대에 지정된 흡연 구역이 거의 없다. 그래서 골목이나 버려진 꽁초가 많은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인근 건물 관리인 A씨는 “그 예산 들여 토끼굴을 꾸미지 말고 주변에 흡연 부스 하나만 만들어 줬으면 이렇게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말했다.
강남역 일대에 설치된 흡연구역은 서초구가 설치한 개방형 흡연부스 하나뿐이다. ‘토끼굴’에서 이 흡연부스까지는 왕복 12차로 강남대로를 건너야 해 8분쯤 걸린다.
강남구에는 현재 구 전체에 흡연 부스가 없다. 강남구 관계자는 “‘토끼굴’은 자연스럽게 비흡연 문화를 유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흡연 부스는 하반기 중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3곳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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