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부, 세대 초월 '차세대 헬로키티'로 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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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중국인 최초 벨기에 일러스트 선발대회 1등을 차지한 홍콩 출신 아티스트 카이싱 룽(KASING LUNG)은 2011년 HOW2WORK와의 콜라보를 통해 그림 동화책 그리고 피규어 제작을 시작하게 됐다. 그 후 그는 동화책을 바탕으로 라부부(LABUBU), 지모모(ZIMOMO) 등 귀여운 몬스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피규어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라부부 캐릭터는 몬스터즈 마을에 사는 호기심이 가장 많고,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 소녀라는 캐릭터다.

호기심 많고, 장난 좋아하는 개구쟁이 소녀 캐릭터
'블라인드 박스' 전략과 '백꾸' 트렌드 맞물려 신드롬
중국 팝 마트(POP MART)에서 발매한 인형 시리즈, 그 중에서도 라부부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팝마트는 1987년생 왕닝이 2010년 창업한 중국 장난감 기업으로, 현재 30여 개국에 52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 라부부와 협업을 시작했으며, 시가총액은 현재 약 58조 원으로 일본 산리오(16.5조 원)와 미국 마텔(8.4조 원)을 합친 것의 두 배를 넘는다. 팝마트 주가가 폭등하게 된 건 라부부 덕이다.
키링 형태 인형인 라부부의 운명을 바꾼 건 2023년 10월, 블랙핑크 리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광고도 아닌, 그저 개인적인 일상 공유였지만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후 태국 왕실의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공주가 에르메스 가방에 라부부 키링을 달고 다니며 '국민적 열광'으로 확산됐다. 이어 리한나, 킴 카다시안, 두아 리파까지 라부부를 선택하며 글로벌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라부부의 성공 비결은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가 착용한 이유도 있지만,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에서 약 1만 5000원에 판매되는 상자 안에는 12가지 기본 디자인 중 하나가 무작위로 들어있다. 여기에 144분의 1이라는 극히 낮은 확률로만 만날 수 있는 '시크릿 에디션'도 포함돼 있다. 이 시스템은 원하는 디자인을 뽑을 수 있는 낮은 확률에다 아주 운이 좋아야 뽑을 수 있는 시크릿 에디션 때문에 스크래치 복권을 긁는 것과 같은 설렘과 희열을 선사한다. 이에 단순히 어린이들만의 장난감을 넘어 30~40대 성인들까지 사로잡으며 컬렉팅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MZ세대의 '가방 꾸미기(백꾸)' 트렌드가 맞물렸다. 사람들은 라부부를 스타일링해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부부가 한몫 잡을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정상적인 구매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중국의 한 자동판매기에서는 전날 밤부터 기다린 리셀러가 오전 10시 입고된 신제품을 몽땅 쓸어갔고, 일부 매장에서는 직원과 짜고 제품을 뒷문으로 빼돌리는 모습까지 목격됐다.
라부부 인기는 전 세계 매장가에 전례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팝마트 매장 앞에는 밤새 긴 줄이 늘어섰고, 영국 런던 매장에서는 라부부를 구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서울 명동 매장에는 안전상의 우려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라부부 재판매 가격은 정가의 4~5배로 뛰었다. 희귀한 시크릿 에디션의 경우 정가 99위안(약 1만 8000원)의 40배인 4000위안(약 75만 원)을 호가했다.
라부부 인기는 6월에도 계속됐다. 6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최초 라부부 전문 경매에서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싱룽이 디자인한 초기 모델 피규어가 2억 원을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세상에 단 한 점만 존재하는 이 희귀 피규어는 라부부 컬렉션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베이징 경매에는 현장에만 200여 명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총 48개의 피규어가 출품된 가운데 또 다른 제품도 1억 원대에 낙찰됐고, 대부분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라부부의 컬렉터블 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또 6월 18일 미국 유명 아티스트 퍼렐 윌리엄스가 설립한 주피터 주최 자선 경매에서 라부부X사카이X칼 하트 협업 한정판 인형 14점이 완판됐다. 낙찰률 100%를 기록하며 마무리된 경매에서 시크릿 컬러 인형이 3만 1250달러(약 43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라부부 열풍은 팝마트의 실적에도 직결됐다. 팝마트의 2024년 매출은 130억 위안(약 2조 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해외 매출은 50억 위안(약 9500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팝마트 주가는 지난 12개월 동안 580% 상승했으며, 2025년 6월 30일 기준 2024년 2월 대비 16배 뛴 270홍콩달러(HKD, 약 4만 6000원)를 기록했다. 지분 48.7%를 보유한 창업자 왕닝(38)의 재산은 30조 원을 돌파하며 허난성 출신 1위 부자로 등극했다.

하지만 라부부 열풍이 가져온 사회적 우려도 만만치 않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인민망)는 지난 6월 20일 "블라인드 카드와 블라인드 박스가 어떻게 '규제 없이 마음대로'(무구속) 운영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블라인드 산업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중국 최고 권력기관의 기관지가 직접 나서서 비판한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인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13세 아이가 50위안(약 9500원) 용돈으로 또 다른 블라인드 인기 상품인 울트라맨 블라인드 카드를 사러 가서, 희귀 카드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추가 구매를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아이들은 희귀 카드를 얻기 위해 단 한 번에 수백 위안에서 수천 위안을 소비하는 경우도 있다.
장융홍 서남대학교 국가치리학원 부원장 교수는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블라인드 박스는 미성년자의 심리적 약점을 정확히 포착한 '상업적 함정'"이라며 "'다음 번에는 당첨될 수 있다'는 착각이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자극해 아이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구매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그러다 6월 18일 밤, 상황이 급변했다. 팝마트가 갑자기 라부부 신제품을 3개 판매채널에 재입고한다는 공지를 올린 것이다. 품절돼 도무지 구할 수 없었던 신제품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서 100만 개 넘게 판매한 것이다. 물량이 풀리자 화들짝 놀란 리셀러들은 보유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판매가를 급격히 내리기 시작했다. 한때 2400위안(약 45만 원) 넘게 팔렸던 6개 세트가 650위안(약 12만 원)까지 떨어졌고, 최고 4600위안(약 87만 원)을 찍었던 시크릿 에디션 상품도 1900위안(약 36만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네티즌들은 이를 '618 팝마트 사건'이라 부르며 리셀러들이 된통 당한 것을 고소해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6월 20일 인민일보의 블라인드 박스 폐해 지적 기사와 연관해 사전에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있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618 사건 이후 팝마트 주가는 최고점(275홍콩달러) 대비 8% 하락했지만, 여전히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이 100배가 넘어 산리오(31배)나 마텔(11.5배)보다 고평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팝마트는 현재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피규어 판매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자체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애니메이션 시리즈 '라부부와 친구들' 제작에 착수했고, 추후 영화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이는 핵심 팬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제품에서 디즈니처럼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대중 소비재'로 나아가려는 시도로 보인다.
인민일보의 강도 높은 비판 보도와 618 사건으로 촉발된 리셀 시장 붕괴는 중국 정부가 블라인드 박스 산업의 부작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박스 산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투기 수단이 아닌 본연의 가치 확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라부부 현상은 중국이 단순한 제조업 국가에서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 할리우드, 일본 애니메이션, 한국 K팝 등 타국의 콘텐츠를 활용해 상품을 제조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하지만 라부부는 중국 발 캐릭터가 전 세계를 사로잡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중국 문화 콘텐츠의 약진은 라부부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가 관객 수 3억 명을 돌파하며 중국 영화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고, 흥행 수익 145억 위안(약 2조 7300억 원)으로 세계 박스오피스 순위 7위에 올랐다. 중국발 게임 '검은 신화: 오공'(Black Myth Wu Kong)도 2024년 11월 제42회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에서 '게임 오브 더 이어'(Game of the Year∙GOTY)를 수상하며 글로벌 인정을 받았다.

영화 '너자2' 세계 박스오피스 7위, 게임 '검은 신화: 오공' 글로벌 수상까지.... 중국발 문화 콘텐츠의 약진
국내에서도 라부부 열풍이 불어닥쳤고 그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걸그룹 아일릿의 멤버 원희는 최근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나 사기당했다'며 가짜 라부부 키링 사진을 공개하여 위조품 유통의 심각성을 알렸다.
네이버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에서도 라부부 열풍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9일까지 라부부 상품 거래액은 전월 대비 121%,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711% 급증했다. 발매가 2만 1000원인 상품이 최고 109만 9000원에 거래되는 등 국내에서도 리셀 시장의 광풍이 재현됐다. 하지만 618 사건 이후 라부부 가격은 국내에서도 하락세를 보여 100만 원 이상에서 거래되던 라부부가 6월 30일 현재 52만 원 정도로 조정되었다.
라부부 현상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문화 강국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국에게 중국이 새로운 경쟁 국가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라부부는 단순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넘어선 '크리에이티브 인 차이나' 콘텐츠로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연 라부부는 추억 속 한때의 유행품으로 잊혀질 것인가, 아니면 헬로키티처럼 세대를 넘나드는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로 성장할 것인가. 그 답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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