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무대’ 오페라… 아리송한 엔딩마저 즐거워

이민경 기자 2025. 7. 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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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개의 오렌지…’ 뜨거운 반응
‘오렌지 사랑하라’ 저주걸린 왕자
공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연극처럼 배우들이 객석에 ‘난입’
뜨거운 스킨십 장면선 장내 정적
핫핑크 빈티지 카 무대위에 올려
공연 도중에도 “재밌다” 반응나와
연출가 “관객에 경험 전하는 작품”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1921년)을 국립오페라단이 전막 공연으로는 국내 최초로 지난달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렸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것은 연극인가 뮤지컬인가. 종종 진부하다고 오해받는 오페라가 이토록 재밌을 수 있다는 데에 관객들 사이에서 중간 쉬는 시간은 물론, 공연 도중에도 “야, 재밌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지난달 26∼29일 나흘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막으로는 국내 초연인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오렌지’)이 무대에 올랐다. 국립오페라단(단장 및 예술감독 최상호)이 선보인 무대는 그 자체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몽환적이고 독특했고, 이야기는 독창적인 해석으로 파격을 거듭했다.

파울 졸러 무대 디자이너는 단층 무대를 2층으로 또 3층으로 변주해갔다. 층위를 두어 수직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배우들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연기했다. 또 핫핑크 빈티지 카를 무대에 올려 실제로 타고 다니게 하는데 그 뒤로 펼쳐지는 배경은 예술의전당에서 시작해 반포대교를 타고 서울을 운행하다 급작스럽게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넘어간다. 한 관객은 이때 “어머, 꼭 우리 집 갈 때 같네”란 감탄을 내뱉었다. 정숙한 오페라 또는 ‘시체 관람’과는 거리가 먼, 시끌벅적한 공연임을 실감케 했다.

지루할 틈이 없는 연출이었다. 마치 연극처럼 배우들이 관객석에 ‘난입’해 연기한다. 막이 오르자마자 이 ‘가짜 관객’이 일어나 큰소리로 노래하는 바람에 옆의 관객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흑사병 마스크를 쓴 ‘비극’을 원하는 이들과 응원 도구인 짝짝이(클래퍼)를 들고 ‘희극’이 되어달라는 이들에 이어 머리에 방석을 뒤집어쓴 여인들은 ‘서정적’인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서로 기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색색의 생일축하 고깔을 쓴 괴짜(리디큘러스)들이 통로로 뛰어들어와 오페라 ‘오렌지’의 시작을 환기시키는 식이다.

빌런 캐릭터인 클라리스 공주(왼쪽부터), 스메랄딘, 레앙드르 총리.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토록 노골적으로 연기할 것이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건강염려증과 우울증으로 웃음을 잃고 시름시름 앓는 왕자(28일 공연, 김영우)가 죽기를 바라는 왕위계승서열 2위인 클라리스 공주(카리스 터커). 그리고 역시 왕위를 노리는 레앙드르 총리(김원)는 정치적 동반자이자 연인 관계다. 지하실 계단에서 둘은 밀회를 나누며 키스 이상의, 뜨거운 스킨십을 불사하는데… 일순 장내에 당황스러운 정적이 감지됐다. 아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의 뒤통수에서 난감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무리는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토막 난 여자 마네킹이 퇴장하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토론거리를 마련해주었다. 왕(최웅조)은 왕자가 통 웃지를 않아 광대 트루팔디노(강도호)를 불러 온갖 묘기를 부리게 하지만, 정작 왕자의 웃음보를 터지게 한 것은 마녀 파타 모르나가(박세영)의 망신스러운 모습이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폭발한 마녀는 왕자에게 ‘세 개의 오렌지를 사랑하라’는 저주를 내린다. 세 개의 오렌지를 찾는 왕자의 로드무비가 앞서 얘기한 빈티지 카의 한국∼미국 여정이다. 여차저차 수중에 넣은 세 오렌지에서는 차례대로 공주가 튀어나오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니네트 공주(김수정)가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녀의 계략으로 니네트는 커다란 쥐로 변해 사라진다. 왕자는 마녀와 한 편인 스메랄딘(김가영)과 급박하게 결혼을 추진하게 된다. 극의 피날레에서 니네트는 마네킹으로 등장하고 곧 사지관절이 모두 분해되어 쏟아진다. 왕자는 니네트(마네킹)를 이리저리 껴맞춰 품에 안고 왈츠를 추지만, 헐거운 이음새는 어느덧 풀려 관절이 여기저기 흩어질 뿐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단체로 ‘멘붕’에 빠진 관객들. 하지만 배우들은 마치 해피엔딩처럼 환희에 찬 어조로 피날레에 다다른다. ‘끝난 건가? 아니면 반전일까?’ 하는 의심으로 인해 관객석에서는 한동안 박수갈채가 띄엄띄엄 나왔다. 하지만 그대로 커튼콜까지 직행하며 정말로 막이 내렸다. 출구로 나가는 관객들 사이에서는 “그래서 니네트가 죽은 거야?” 하는 아리송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로렌조 피오로니 연출가는 어떤 의도였을까. 작품 연출 노트에서 그는 “이 작품은 어떤 ‘정답’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경험’하게 만드는 장”이라며 “관객은 인간의 내면, 본능과 비이성, 무의식이라는 어두운 공간을 함께 탐험한다”고 말했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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