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름의 섬, 제주를 걷다

김수원 2025. 7. 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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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지키기’와 ‘생태보상제’를 제안하며
제주도 속담에 '동네 심방 내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부터 자신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평가절하해 버리는 경향을 꼬집는 말입니다. 제주를 떠나봐야, 밖에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제주의 진정한 멋,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경기도 광주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수원 님이 고향 제주를 향한 애정과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제주의 가치를 키우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글]
다랑쉬오름과 주변의 오름들에 내려 앉은 황혼(사진=문희주 교수 제공). ⓒ제주의소리

제주는 약 180만년 전부터 5천년 전까지 이어진 화산 활동이 빚어낸 섬이다. 제주 섬의 형성 과정에는 여러 연구가 있으며 해석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정리하면 이렇다. 산방산 같은 비교적 이른 단독 화산들이 먼저 솟아올라 섬의 뼈대를 이루었고, 이어 수월봉 등 다양한 화산체가 차례로 형성되며 제주의 형태가 갖춰졌다. 마침내 중심에서 지축을 흔들 듯 한라산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 섬의 주산이 되었고, 이후 수많은 오름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파도·마라도·우도·비양도 같은 부속 섬들이 제주 연안을 메워주었으며, 동쪽 해안에 우뚝 선 성산일출봉이 그 빈자리를 더해주어 오늘의 조화로운 제주 지형과 풍경을 완성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형제처럼 닮은 듯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섬 전역을 감싸고 있다. 대부분은 기생 화산으로, 분출물이 주변에 쌓여 언덕 형태를 이뤘다. 산굼부리나 다랑쉬오름처럼 분화구가 잘 보존된 곳은 제주 화산지형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들 오름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제주의 자연과 삶, 문화를 함께 빚어온 생명의 산실이다. 위엄 있는 한라산과 주변 오름들은 서로 어우러져 입체적인 자연 서사를 만들어 낸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면, 제주 섬은 오랜 세월 창조주의 섬세한 손길로 다듬어진 걸작이다.

새별오름, 산방산, 성산일출봉 등은 저마다 독특한 생김새와 이야기를 품고 제주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해 왔다. 오름은 제주인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존재의 숨결이며, 공동체의 추억이 깃든 땅이자 애틋한 그리움이다.
'산방산이 보이는 교회'에서 내려다본 산방산 전경(사진=김태헌 목사 제공). ⓒ제주의소리

'오름'은 제주 방언으로 '오를 만한 작은 산'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오르다'의 명사형으로 알려졌지만, 오름 연구자 문희주 교수는 『제주오롬 이야기 1』에서 산을 뜻하는 만주·몽골어 'ᄋᆞᆯ(ᄋᆞ리)'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오롬'이라는 표기를 제안한다. 음상의 유사성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고려 말 100년간의 몽골 지배와 제주 고유의 언어 고립성을 감안하면 북방 언어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언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삶의 표현이기에 그러하다.

어릴 적 오름은 그저 가까운 뒷산이었다. 강정 해안에서 바라본 해질녘 송악산과 산방산, 월라봉, 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미술 시간에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오름임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다. 너무 가까웠기에 그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 못내 아쉽고도 미안하다.

최근 들어 오름의 생태·문화적 가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곶자왈이 분포한 중산간 오름은 보전 강화지역으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 368개 중 절반이 넘는 204개는 여전히 개인 소유로 남아 있어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 큰 위협은 외지 자본의 급속한 유입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제주 토지는 약 2179만㎡로, 도 전체 면적의 1.17%에 달한다. 이는 여의도의 7.5배, 우도의 3.5배 규모다. 특히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은 60% 이상이 도외인 소유로 조사됐다(제주참여환경연대, 2024.10.29). 2021년에도 도내 개인 소유 토지의 33.2%가 도외인 소유였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추세라면 머지않아 외국인을 포함한 외지인 소유 비율이 50%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외지인의 입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제주를 아끼고 보전을 고민하는 외지인도 물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태와 역사를 모른 채 개발 이익만 노리는 투기성 자본이다. 그들에게 땅은 소중한 삶터가 아니라 단지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난개발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역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삶의 기억을 지운다.

송악산 일대를 매입해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하려 한 중국 자본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여론의 힘으로 제주도가 이를 도로 매입해 보존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해결은 주민의 참여와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큰노꼬메에서 바라본 제주 오름들(사진=네이버 블로그 '제주愛 퐁당' 제공). ⓒ제주의소리

오름은 수천 년 동안 자연과 사람이 함께해 온 공존의 자리다. 오름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지형만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세월의 기억과 이야기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오름을 지키기 위한 법과 행정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실천은 부족하다. 이제는 이 침묵을 넘어서야 한다. 실효성 있는 제도와 지역 공동체의 연대,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오름 지키기'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생태보상제'를 제안한다. 오름의 상당수가 개인 소유인 점을 감안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개인 소유인 오름을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공공의 지원과 보상이다.

현재 제주에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가 시행되고 있다. 이를 오름 보전 소유자에게까지 확대해 '생태보상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볼 만하다. 보존 목적의 토지 소유자에게 재산세 감면, 환경 기여 인증, 장학금 등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보존 목적 등록제'를 통해 공익적 소유의 길을 넓힌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는 새로 오름을 매입해 지키려는 이들뿐 아니라, 오랜 세월 개인 소유 오름을 묵묵히 지켜온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생태보상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로서, 오름을 개발하지 않고 보전하기로 한 이들을 '지역 유공자'로 예우하는 조례가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례는 보전을 선택한 소유자가 경제적 부담 없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에 따른 구체적 쟁점과 실행 방안은 앞으로의 입법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오름 보전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고향은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내게 오름이 그러했다. 고향 제주를 떠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오름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자산이며, 화산의 긴 시간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기까지 창조주의 손길이 얼마나 깊게 스며 있었는지를. 하지만 파괴는 한순간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땅을 지켜야 할 차례다. 긴 세월 우리를 품어준 노부모를 돌보듯 지켜내야 한다.

제주의 풍경은 독보적인 주연 한라산과 그를 품은 수많은 오름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오름이 사라진 제주는 조연이 빠진 무대처럼 감동과 깊이가 사라진 메마른 서사로 남을 뿐이다.
김수원 님. ⓒ제주의소리

이 순간에도 이 땅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고향 사람들의 헌신은 창조주께서 맡기신 땅을 지키는 동산지기의 모습이다. 이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작은 실천이 제주를 지킨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은 이 땅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선한 길이다. 그 길 위를 오늘 우리가 함께 걷고 있음을 잊지 말자. 제주의 미래가 '오름의 섬', '생명의 땅', '평화의 섬'으로 오래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김수원(경기도 광주시 태봉교회 담임목사·서귀포시 강정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