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2004년 7월 1일 80세
읽은 적 없어도 누구나 아는 책을 고전(古典)이라 하듯, 본 적 없어도 누구나 아는 영화 또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제목만큼은 누구나 아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아가씨와 건달들’(1955), ‘대부’(1972),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3), ‘지옥의 묵시록’(1979)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말론 브랜도(Marlon Brando·1924~2004)가 출연한 영화사의 고전이다. 스스로도 고전이 된 이 미국 배우는 21년 전 오늘인 2004년 7월 1일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브랜도 별세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2004년 7월 3일 자 A28면 기사는 ‘강렬한 표정 연기로 20세기 사로잡아’가 제목이다. ‘아카데미 남우상 2차례, 반항·기행 이단 취급도’라는 부제를 달았다. 브랜도가 영화 ‘위험한 질주’(The Wild One·1953)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폭주족 리더 조니 스트라블러를 연기할 때 입은 가죽 재킷과 청바지 차림은 이른바 ‘비트 세대’라는 당대 반항적인 청년 문화의 상징이었다. 영화 ‘에덴의 동쪽’(1955), ‘이유 없는 반항’(1955)으로 스타덤에 오른 제임스 딘(1931~1955)이 닮고자 했던 반항아 연기의 전범이 말론 브랜도였다. 브랜도는 1955년 영화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반골 기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1973년 영화 ‘대부’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을 때 시상식 장면이다. 말론 브랜도는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름이 호명됐을 때 무대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대신 올라갔다. 아파치족 출신으로 이름을 사친 리틀페더라고 밝힌 여성은 “말론 브랜도는 유감스럽지만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면서 미국 영화 산업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다루는 방식과 최근 운디드니(Wounded Knee)에서 벌어진 일을 언급했다.

운디드니는 미국 중서부 사우스다코타 주(州)의 지역 이름이다.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 500여 명이 운디드니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290명을 학살했다. 당대엔 정당한 전투(Battle)로 기록했으나 지금은 무기도 없는 원주민을 학살(Massacre)한 일로 평가된다. 1973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리기 한 달 전인 2월 27일 미국인디언운동(AIM) 소속 원주민 부족 200여 명이 인질을 잡고 원주민 차별 해결을 요구하며 운디드니 마을을 점거한 사건이 벌어졌다. 미 연방정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원주민 2명이 사망하고 인디언 사무국이 무단으로 원주민을 보복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브랜도는 이 같은 일을 알리며 아카데미상 수상을 거부한 것이었다.

개인적인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이혼과 결혼을 거듭했고,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다. 아들이 딸의 애인을 총으로 쏴 살해하는 일도 겪었다. 성격이 괴팍해 함께 일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유명했다. 촬영할 때 처음엔 일부러 가짜 연기를 하고서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하면 촬영장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연기의 진위를 알아보지 못하는 감독과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말론 브랜도의 기행은 1950~1960년대 한국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소식이 조선일보에 가장 먼저 실린 때는 1956년 6월 1일 자 신문이었다. ‘성림(聖林·할리우드)의 인기 배우 소식: 일어 배우는 마론 브란도’란 제목으로 “마론 브란도=그는 영화 ‘8월 달의 찻집’에 출연하기 위한 일본인 의상을 갖추기 위하여 2시간이나 화장하였다. 브란도 군은 또한 매주 4일간씩 저녁마다 일본어의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에도 ‘배우 브란도 이혼’(1959년 4월 23일), ‘따귀 맞은 브란도-전처와 법정 투쟁 끝에’(1961년 12월 30일), ‘흑백 평등 외치는 남우 브란도 군’(1963년 7월 30일), ‘브란도와 전처, 아들을 육사에 맡겨 교대 방문키로’(1965년 1월 23일)처럼 시시콜콜 소식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이 존경하는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말론 브랜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하나의 표지이다. 영화 연기의 역사는 ‘브랜도 이전’과 ‘브랜도 이후’로 나뉜다(He is the marker. There’s ‘before Brando’ and ‘after Br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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