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미지와 김살모사

이유지 2025. 7. 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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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각지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과 '김살모사(김군을 살리고자 모인 사람들)' 3인조를 꾸려 그가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수많은 미지와 김군에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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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육상선수 꿈이 꺾인 후 3년 동안 방에서 은둔한 미지(박보영). tvN 캡처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부상으로 육상선수 꿈이 꺾이고 3년을 은둔한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유미지. 미지에게 육상은 어머니가, 세상이 자신을 쓸모 있게 봐준 유일한 장기였다. 굳게 잠긴 미지의 마음을 연 건 문 앞에서 기다려 준 할머니다. "내가 쓰레기 같다"는 미지를 할머니는 있는 그대로 안아 준다.

내게도 미지가 있다. 5년 전 "김군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군은 대학 시절 빛나는 친구였다. 항상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고, 학교 축제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땐 반짝였다. 그런 그가 2년여 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니. 각지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과 '김살모사(김군을 살리고자 모인 사람들)' 3인조를 꾸려 그가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거처 인근에서 대책 없이 기다리다 초조해질 무렵 김군이 나타났다. 그는 "여기 나오려 2년 만에 머리를 잘랐다"며 "내가 이런 놈이면 안 되는데"라고 머쓱해했다. '번듯한 직장'을 원하던 부모와 진로 갈등이 있었고, 기대에 부응하려 대기업·공무원을 목표로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고, 계속되는 거절을 실패로 받아들인 김군은 숨게 됐다.

사회는 청년의 '쉼'을 쉽게 '게으름'으로 치환한다. 그러나 이는 압축 성장 끝에 한국이 앓고 있는 획일적 교육, 경직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침체하는 경기, 비교·경쟁의 일상화와 실패를 낙오로 낙인찍는 문화가 얽혀 만든 질병의 한 증상일 뿐이다. 30대 이하 쉬었음 청년 80만 명, 이 수치를 오롯이 청년 탓으로 돌릴 순 없다. 직접 만난 쉬었음 청년들은 각자 실패를 겪고, '당장 생산해 내지 않으면'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겨 위축돼 있었다.

한 번의 실패가 쉼으로 이어지고, 쉼이 장기화하면 고립·은둔으로 진전한다. 언론은 늘 거대 담론 해법을 고민하지만, 가끔 어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여겨 기사에 담지 않는다. 첫 직장에서 상처받고 고립된 다은(가명)씨를 꺼낸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가상 회사에 무업 청년을 고용하는 '니트 생활자', 고립 청년을 밖으로 불러내는 청년이룸의 '나와, 우리동네 퀘스트 투어' 등이 사람을 잇는 데 힘 쏟는 배경이다.

취재하다 만난 한 고물상 대표는 방문을 잠근 조카를 헤아리다 고립 청년 후원자가 됐다. 3인조 만남 이후 김군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구직을 시작했다. 회복 탄성력이 떨어진 청년에게 필요한 건 사회가 날 저버리지 않았다는,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믿음이다. 나 역시 숨고 싶은 때가 있었다. 붙잡아 준 건 내가 꼭 기자가 됐으면 한다던, 나보다 날 믿어 주던 지인의 한마디였다. 수많은 미지와 김군에게 그 말을 돌려주고 싶다.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 너도 너를 포기하지 말아 줘."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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