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동맹 균열 부를 수 있는 ‘GDP 5% 국방비’
유럽 독자방위 노력 본격화로 美도 딜레마
한국에 요구 현실화 시 국방비 2배 이상↑
동맹 간 솔직한 대화와 안보 분업 절실해져

합의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많다. 표면적으로는 역사적인 방위비 증액이라는 외형을 갖췄지만 단지 3.5%만 병력과 무기 같은 군사 핵심 역량에 집중되고, 1.5%는 사이버, 인프라, 송유관 보호 등 ‘확장 항목’에 포함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는 나토와의 충돌에 대비해 병력을 빠른 속도로 재편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상황에서 10년이 걸리는 나토의 합의는 방위비 증액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스페인과 슬로바키아 등 일부 국가는 증액 약속을 회피하고 있어 합의의 구속력도 명확하지 않다. 유럽 내 반발도 예상된다.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5%로 증액하려면 복지 삭감, 세금 인상, 국가 부채 증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각국 정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복지 축소는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이어질 수 있고 청년층은 병역 재도입 등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세대 간 균열도 우려된다.
무엇보다 나토의 방위 목표를 두고 미국과 유럽의 일치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작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문서에는 러시아라는 단어가 43번 등장했지만, 올해 성명에서는 단 한 번만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푸틴 성향을 의식한 결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집단방위 공약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가 국방비 5% 증액을 합의하고서야 공약을 재확인했다. 장기적으로 나토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졌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 없는 유럽의 방위에 주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자주적 방어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앞장서 주창해온 프랑스는 유럽방위기금의 확대, 독자적인 핵무기 신뢰성 유지, 다양한 글로벌 도전에 대한 직접 대응 등을 주장해왔다. 유럽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방위의 독자성을 확보할 경우 미국에 더 큰 자율성을 요구하게 되고, 미국은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는 오히려 개입 권한 약화와 동맹에 대한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면서 지속가능한 안보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나토 정상회의를 전후해 미 백악관과 국방부는 아시아의 동맹국들도 유럽을 본받아 GDP 5%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한국은 GDP 대비 2.3% 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는데, 미국의 요구가 현실화된다면 두 배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61조 원에 이르는 국방비는 130조 원 이상으로 급증할 것이고, 이는 2025년 기준 정부 총예산 677조 원의 20% 수준이다. 국방비가 교육, 복지 예산보다 많은 최대의 단일항목예산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해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는 차원이 다른 요구다. GDP의 1.8%를 국방비로 쓰는 일본에도 5% 지출은 큰 정치적 논란을 야기할 것이다.
막연한 숫자를 목표로 표시된 국방비 증액이 실질적인 전력 증강으로 이어질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미 상당한 국방비를 지출하는 한국에 미국의 요구는 지나친 개입으로 비칠 수 있고,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우려로 연결될 것이다. 관세 인상 등 경제적 요구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같은 미국의 압박이 강해지면 자주국방에 대한 국내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을 통해 미국이 이루고자 하는 군사안보 전략의 밑그림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문제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의 기여 증대를 통해 단지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승리하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화된 패권의 경제적 기초를 회복해 보다 나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재건하려는 것인지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안보 위협에 대한 긴밀하고 솔직한 전략 대화에 이어 정확한 지역안보 분업 구조를 확립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새로운 안보질서를 구축하고자 할 때, 동맹국은 자국의 이익과 지역의 안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려 할 것이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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