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배역보다 관객에게 집중하길 바랍니다

유호명 2025. 6. 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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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뜻하는 한자 面(면)의 갑골문은 머리칼을 '一'로 처리한 얼굴 윤곽이다. 가운데 눈(目) 하나만 뚜렷한 걸 보면, 포인트는 역시 눈이다! 얼굴에 쓰는 탈을 가짜 얼굴 곧 가면(假面)이라 한다. '귀신 귀(鬼)'는 가면 쓴 사람, '두려울 외(畏)'자는 창을 든 귀신이다. 의식에서 두려움과 공경을 드러내려 사람들은 가면을 썼다. 그러나 사실 가면에는 영혼이 없다. 남북한이 서로 비방하던 말 '괴뢰정권'의 괴(傀)는, 제 주장 없이 남의 손끝에서 놀아나는 인형극 꼭두각시이다.

선사시대 암벽화에 가면들이 보인다. 사냥이 잘 되길 비는 주술이다. 이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던 주술은 별개의 축제와 예술로 발전한다. 가면 여럿 갖춘 탤런트가 때와 곳에 따라 얼굴을 바꿔서 연기한다. 희랍의 배우들이 썼던 가면이 페르소나(persona)이다. 이 말에는 '소리(sonare)를 통해서(per)'라는 의미가 담겼다. 배역은 가면과 목청에 달렸다! 페르소나의 방점이 얼굴 아닌 소리에 매였다니, 여기에 깊은 뜻이 담긴 것도 같다. 이 낱말 페르소나에서 이윽고 '역할'과, 그 역할 맡은 사람 퍼슨(person)과, 성격을 이르는 말 퍼스낼러티(personality)가 생겼다.

아바타(avatar)도 페르소나와 비슷하다. 온라인과 가상현실에서 클라이언트 개개인을 대신하는 이미지 캐릭터 아바타는, 말하자면 손오공이 털 뽑아 훅~하고 불면 나타나는 분신(分身)이나 화신이다. 가상현실 속 아바타 역할에 익숙해진 제이크가, 영화 아바타에서 독백한다. "모든 것이 반대가 되었다. 바깥 세상은 현실이고 여기는 꿈이다. 예전의 삶이 희미해져, 이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상이군인 제이크는 나비인가 장자인가. 나비족 전사는 아바타일까?

가면을 가리키는 말에 마스크(mask)도 있다. 낱말 페르소나, 아바타, 마스크를 놓고 보니, 이 가면들의 쓰임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페르소나가 예술적 철학적으로 근사한 멋쟁이라면, 마스크는 환경적 물리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인, 아바타는 꿈과 현실을 매개하는 환상만 같다. 페르소나는 본래의 가면 자체와 그 가면의 배역인 듯하고, 마스크는 가면이라기보다 적당히 가리는 치장과 그 치장 도구였던 것도 같다. 속눈썹 가리키는 '마스카라'가 마스크에 엮인 말이다.

배우는 페르소나를 수시로 바꾼다. 생각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서로 다른 위격도 하나의 진면목에 세 개의 페르소나 아닐까. 그랬을 때 가면은 하나의 방편이지, 거짓과 부정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가면, 페르소나로 살아간다. 닥터 지킬이면서 또 동시에 미스터 하이드이다. 옳고 그르고와는 별개로, 자리와 역할 따라 '남에게 인식되길 바라는 면(面)'만 드러낸다. 나는 남편, 아빠, 남자이면서 선배, 후배, 친구이다. 아들인 나와 아비인 나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때와 곳에 맞는 페르소나를 잘 골라 써야 지혜로운 삶이다.

정권이 바뀌자 없던 페르소나가 등장한다. 배역을 맡아 새로운 아바타로 무대에 선다. 원하던 역할 을 바라면서 가면부터 쓰기도 한다. 무대에서 내려와 진면목을 찾는 이도 보인다. 분명한 점은 새로운 공연의 막이 올랐음이다. 능력과 쓰임에 맞는 배역을 맡거나 물러나야 한다. 아무렇거나 정작 중요하기는 이 공연에 울림과 재미가 있어야겠다는 점이다. 비극은 사양한다. 당신들의 배역에 충실하되 개인적 영화와 영예는 접고, 관객들의 즐거움에 집중하길 바란다. 객석에 앉은 이들의 호불호 분명한 진면목도 살피면서 연기할 일이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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