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이 진정 원하는 건 ‘시설’ 아닌 ‘가정’이다 [왜냐면]

한겨레 2025. 6.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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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욱 | 덕성여대 교수(사회복지학)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18일, 보호대상아동 초기보호체계 시범사업 실시 지역으로 인천시를 선정했고 초기보호센터 수행기관으로 인천보라매아동센터를 지정하였다. 복지부에 따르면, 초기보호체계는 부모의 사망 등으로 보호대상아동이 발생한 직후부터 해당 시·군·구의 최종 보호조치 결정 전까지 일시보호 동안 국가와 광역시·도가 아동을 책임지고 보호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인천보라매아동센터는 아동복지시설 중 하나인 아동일시보호‘시설’이다. 초기보호체계는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일시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

첫째, 일시보호 강화를 왜 ‘시설’ 중심으로 하는가? 아동이 태어난 집에서 잘 자라기 어려울 때, 국가는 보호자의 역할로 개입하여 양육을 대신하게 된다. 이때 국가가 대신하는 양육(대리양육)에는 가정위탁,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등의 방식이 있다. 아동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멀지 않은 곳,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자연스러운 양육 환경을 보장하는 곳, 즉 가정이나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좋고 마땅하다. 모든 아이는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집’ ‘~원’과 같은 간판이 붙은 큰 건물 내부에 자체 놀이터가 있고 텃밭과 운동장도 갖춘 시설은 많은 아이가 자주 바뀌는 양육자(보육사)와 함께 단체생활을 하는 ‘서비스 랜드’에 가깝다. 양육자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내 공간, 내 시간, 내 생각이 아닌 공유 공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삶이 굴러가는 곳이다. 이러한 시설에 사는 것이 알려질까 두려웠다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는 시설이 자연스러운 양육 환경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립준비청년이 가장 원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 또한, 그렇게 많은 아동이 여러 어른과 함께 살았던 양육시설에서 친밀한 관계 경험을 충분히 갖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국가가 대신 아동을 보호·양육해야 한다면 ‘시설’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시설’이 아닌 대안, 즉 ‘탈시설’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시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또 다시 ‘시설’을 거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둘째, 일시보호를 왜 강화해야 하는가? 일시보호는 말 그대로 단기, 일시적으로 아동을 보호하는 것이며, 반대는 영구적 보호다. 즉, 영구적 보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시보호가 필요하며, 그 시간은 최소화해야 한다. 영구적 보호는 오랫동안 계속되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동의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오랫동안 쭉 유지되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동의 안정적 양육을 보장하는 환경은 어디일까? 바로 원가정(아동이 태어난 가정)이다. 그런데 태어난 가정에서 학대가 이루어졌다면, 그래서 원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면,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서 아동을 일시적으로 잘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시보호 동안 원가정이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영구적 보호를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일시보호를 활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 복지부가 발표한 초기보호체계에는 원가정 지원·강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한 아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엄마 아빠를 도와주세요.” 아이들도 다 안다. 엄마 아빠에게 어려움이 있고 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어려움을 해결할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랑 영원히 따로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이 외침을 외면하고 원가정에 대한 지원을 빼놓은 채로 아동만 쏙 빼서 분리 보호하겠다는 것은 아동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듣지 않는 처사다.

국가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모든’ 아동이 가능한 원가정에서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있다. ‘아동 최상의 이익’이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원칙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 아이들이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둘러본다면, 대리양육이 필요한 아동에게도 ‘시설’이 아닌 ‘가정’을 만들어주고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효율성과 공급자 중심의 초기보호센터를 제안할 것이 아니라, 아동이 원하는 것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진짜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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