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가상자산 패권 노리는 美 ‘지니어스법’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 역사적인 법안을 하나 통과시켰다. 바로 달러에 연동되는 가상화폐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기준을 담은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Guiding and Establishing National Innovation for U.S. Stablecoins Act of 2025)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달러나 원자재 등 현행 법정화폐나 실물 자산에 가치를 고정한 가상화폐로, 가치가 안정적이며 변동성이 적다는 장점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법안의 상원 통과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의 첫 관문을 넘은 것으로 “가상화폐 산업에 중대한 이정표”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니어스 액트는 현재 하원 통과 및 대통령 서명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원화에 가치가 고정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니어스법과 비슷한 ‘디지털자산 시장의 혁신과 성장에 관한 법률’ 초안을 공개했으며,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한 상태다.
지니어스 법은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담겨 있다.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서 달러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지니어스 법 제정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2022년 5월 테라-루나 사태 이후다. 테라-루나 사태로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법적·제도적 단일화된 규제와 기준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후 규제 기관별 해석 및 규제방식 상충 등의 이슈로 통일된 법안 마련의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이렇게 해서 최초의 연방 차원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액트가 탄생했다.

미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020년부터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2000년초 50억달러였던 시장 규모는 테라-루나 사태 직전 1870억달러까지 급성장했다. 이후 시장 전체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규모가 축소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현재 2500억달러 수준으로 커진 상태다.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운영에 대한 규제 체계를 명시해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규제체제를 명확히 한 것이 특징이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증권거래위원회(SEC),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통화감독청(OCC) 등의 연방기관별 규제 해석 및 주정부 차원의 규제 범위 등이 상이한데서 비롯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혼란을 정리했다.
법의 적용 대상은 가치가 고정된 자산에 연계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payment stablecoin)이다. 이 법에 따라 허용된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은 증권법상 증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코인은 허가받은 발행자만 발행할 수 있다. 이외의 발행자가 미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FDIC(연방예금보험기구)의 예금보험 제도에 가입한 부보회사의 자회사 중에는 본사의 주 연방법 규제 기관이 120일 내 승인한 회사만 발행할 수 있다. 주정부가 승인한 비은행 발행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규모가 100억달러 미만일 경우 주정부 승인(주 금융규제청)으로 발행 허가가 가능하며, 발행 후 시가총액이 100억달러 이상으로 규모가 확대될 경우 주정부 승인 발행자더라도 연방 OCC에 승인 신청 후 OCC에서 감독한다. 외국 발행자의 경우 미국과 유사한 금융규제를 가진 국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만 제한적으로 발행이 허용된다.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일 대 일의 비율로 미 달러화 혹은 연준 예치금, 단기 국채, 레포(REPO), 머니마켓펀드(MMF) 등의 유동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반드시 예치해야 하며, 이 준비금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신뢰 회복과 이용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준비금 투명성과 함께 다양한 소비자보호 장치도 포함했다. 스테이블코인 사용자는 코인을 액면가로 상환 요청을 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지며, 발행자는 이 요청을 합리적인 기간 내에 일 대 일 혹은 동등 자산으로 상환해야 한다. 발행자 파산으로 인한 지급불능 시, 이용자는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해 준비금 자산에 대한 청구 권한도 갖는다. 준비금은 발행자의 영업 자산 등 기타 자산과 반드시 분리하여 신탁계좌(trust account) 혹은 제3의 수탁기관(custodian)에 보관해야 한다. 또 준비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리스크가 없는 유동 자산으로 보유해야 하며, 준비금의 임의 재활용(rehypothecation)을 엄격히 제한했다.
미국은 이 법의 제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이 전통적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결제시스템의 효율화 등을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단순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강화를 넘어 향후 관련 산업 육성 및 규제를 통한 혁신을 장려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가오는 디지털 화폐 시대에도 월가의 금융패권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연방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그동안 진입을 망설였던 은행 등 전통적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핀테크, 벤처캐피털(VC) 등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확대가 예상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금융인프라 구축도 가능해졌다. 달러화 기반의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실시간 결제 및 해외 송금 수단으로 활용되고, 향후 디지털 자산결제 인프라로 기능을 넓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USDT 60% 이상, USDC 약 23%, 기타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들이 10% 내외를 차지하는 등 미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90%에 가까운 비중을 보이고 있다. 유로나 엔화 등 비달러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규제화된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민간 가상자산이 아닌,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통화정책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렇게 되면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사용 확대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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