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추상의 경계에서 피어난 언어…'신중덕, 추상, 생명'
물질에서 시간까지…'자기회귀'부터 '만화경'까지 3부 구성
생명은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자연의 반복과 찰나, 생명과 사물의 경계를 그림으로 옮긴 작가가 있다. 이응노미술관이 올해 세 번째 기획전으로 선보이는 '신중덕, 추상, 생명'은 대전을 기반으로 추상회화에 매진해온 원로 작가 신중덕(1949-)의 작업 세계를 집중 조명한다. 40여 년간 이어온 그의 화업은 물질에서 공간으로, 시간으로 흐르며 생명을 향한 끊임없는 사유로 이어진다. 단순한 형상의 왜곡을 넘어 생명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를 소개한다.

◇ 생명에 대한 화두, 유기적 추상으로 펼치다
이번 전시는 '여성과 추상'을 연간 키워드로 삼은 이응노미술관이 '추상'에 초점을 맞춰 기획한 세 번째 전시다. 신중덕 작가는 '생명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출발점 삼아, 물질성과 유기성을 넘나드는 조형언어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신중덕의 추상은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과 달리 자유로운 양식의 유기체적 추상(Organic Abstraction)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의 대표적 추상화가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의 '바이오모픽(Biomorphic) 아트'와 같은 생물 형태적 추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꽃, 나무, 인간 신체 같은 자연 속 생명체를 모티프로 사용하는 작가의 작업은 추상화의 유기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전시는 생명의 본질을 세 가지 장으로 나눠 시각화했다. 각각은 생명의 시작을 탐구한 4전시장 '자기회귀', 자연의 리듬과 율동을 반영한 3전시장 '생명률', 시간 속 찰나를 포착한 2전시장 '만화경'이다.

◇ '자기회귀', 모든 생명은 물질로 돌아간다
역순으로 구성된 전시는 4전시장 '자기회귀'에서 출발한다. 그의 1980년대 제작된 초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당시 신중덕은 모든 형상은 곧 물질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생명의 원초적인 힘을 탐구하는 '자기회귀'의 개념을 작품에 반영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흩뿌리거나 천에 무수한 칼질을 가하는 등 격렬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본인만의 방식으로 생명성을 표현한다. 4전시장에선 이처럼 무채색의 거친 마티에르(matiere, 질감)를 강조하며 물질 간 교감을 중시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 '생명률', 중첩과 반복으로 그리는 생명의 리듬
3전시장 '생명률'에선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초기 작품과 비교해 밝은 색채를 활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작가는 섬세하고 우아한 붓질을 통해 소재와 색을 여러 번 그리고(Drawing) 또 칠하는(Painting) 중첩 기법을 사용해 생명의 리듬이 캔버스를 가득 메운다. 초기부터 이어지는 이런 반복적인 행위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으로, 작가의 고뇌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반복적 붓질은 생명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 '만화경', 시간 속 생명의 찰나를 포착하다
마지막 섹션인 '만화경'은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신중덕 작가의 가장 최근작들이 전시된다. 이 시기 작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화경의 특성에 주목했다. 그는 생명 현상 또한 만화경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철학을 작품에 반영했다. 2전시장의 작품들 속에선 사람의 신체나 거대한 나무 등이 마치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현상처럼 그려져 있다. 이는 공간과 시간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속에 존재하는 생명의 모습을 포착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보여준다. '만화경' 섹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생명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찰을 담아낸 작품들로 구성돼 있으며, 유려한 선과 다양한 패턴으로 구성된 후기 작업은 추상의 유기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며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특히 작가의 작품엔 모래시계나 계란과 같이 함축적인 요소들이 숨겨져 있어, 자세히 봐야 작가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체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며, 이러한 기호들을 작품의 조형 요소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모과의 절편을 배열하여 언어 체계를 만들거나, 생명의 출발점을 의미하는 오방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생명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와 조형적 실험이 맞물린 결과물로, 변화와 순환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과정이다.

◇ 작가의 말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
신중덕 작가는 "국내외 전시는 여러 차례 했지만, 기획 의도를 갖고 초대된 건 처음이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이름을 단 전시라 처음엔 부담스러웠다"며 "추상화가 이응노 선생의 예술 정신과 어떻게 이어질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고심 끝에 대전 작업실에 보관된 작품들 중 기획 의도에 맞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전시를 구성했다"면서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자기회귀, 생명률, 만화경이라는 주제 흐름에 따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명 간의 관계성'이다
그는 "각 파트마다 변곡점이 되는 작품들이 있고, 이를 따라 관람하면 작품 속 의미가 더욱 잘 읽힐 것"이라며 "그림에 등장하는 모래시계, 알, 절편, 오방색 등의 기호는 모두 생명과 시간, 공간을 은유하는 상징들이다"고 해석했다.
'신중덕, 추상, 생명' 전시는 오는 8월 24일까지 계속되며, 이응노미술관 2-4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 해설과 작가 인터뷰 영상 등은 이응노미술관 공식 SNS 채널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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