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와 설움의 땅’ 광주 문학에 내린 ‘벼락같은 축복’
광주 출신…세계적 작가 발돋움
부친 소설가 한승원 ‘문학 가족’
소설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
‘5·18 상흔’ 광주에 위로의 선물
인간의 존엄·민주주의·인권…
인류 보편적 가치의 정점, 광주

물론 ‘벼락같다’는 말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 함의돼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급작스러운 경사였다. 언젠가는 타겠지, 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당장 그것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문단 안팎에서도 빠른 수상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일 뿐이지, 언젠가 노벨상을 타리라는 것에는 암묵적으로 공감하고 있던 차였다.


당시 심사위원 가운데 한 명인 영국 인디펜던트지의 보이드 톤킨 문학선임기자는 이렇게 평했다. “한강의 작품은 우아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묻어나며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가 이뤄졌다”고.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맨 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이미 한강의 문학이 세계 문학계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소설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과 그로테스크한 욕망을 마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아름다우면서도 예리하게 구현됐다. 작품에 드리워진 상징과 메시지, 존재에 대한 탐색, 철학적 사유 등은 잘 빚은 모던한 도자기를 연상하게 할 만큼 미려하다.
한국문학 연구자라면, 어느 정도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또는 문학출판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한강 작가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부서질 듯 여려 보이는 외양과 달리 작가의 내면에는 단단하면서도 예리한 문학적 자아가 깃들어 있었다. 우아함, 강렬함, 아름다움, 공포 등의 키워드는 한강의 문학이 지닌 깊이와 넓이, 다채로움과 예술성을 아우른다.
한강은 맨 부커상 수상 당시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폭력과 인간 존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는 유사한 면이 있다”고 했다.
또한 “‘소년이 온다’는 제가 작품을 썼다기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80년 광주를 체험했던 시민들이 작품을 썼다고 본다. 글을 쓰는 동안 저의 삶을 온전히 그분들께 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지난 70년 11월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과 어머니 임감오씨의 딸로 태어났다. 광주 효동초등학교를 다니다 아버지가 문학에 대한 큰 꿈을 안고 상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로 갔다. 이후 풍문여고,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잠시 ‘샘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연세대 국문과 시절, 한강은 글을 잘 쓰는 학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시적인 문체, 심금을 울리는 섬세한 문장은 한강의 작가로서의 대성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샘터’에서 근무를 하며 틈틈이 창작을 했다.
알려진 대로 문단 데뷔는 시를 통해서였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명함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후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한강은 끊임없이 작품을 매개로 인간과 존재, 폭력과 광기, 사랑과 희망과 같은 담론을 작품 속에 투영해왔다.


광주는 오랫동안 문향(文鄕)의 도시였다. 역사, 예술, 인물 등 제 분야에서 충분히 그런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에 주어진 노벨상 2개 모두 광주와 관련된 것이다. 적어도 노벨상 수상위원회라는 틀로 본 서구인의 시각에서, 우리가 이룬 것들 중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 광주였다는 뜻”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보편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질료가 광주에는 많다. 역사와 배경, 사건 등에서뿐만 아니다. 광주에는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많다. 한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은 충분히 광주를 넘어 세계 속에서도 확장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광주정신’이 그 배면에 드리워져 있다.
현대시학의 대표적 시인인 ‘나두야 간다’의 용아 박용철의 고향은 광산구 소촌동이다. 동요 ‘강아지’, ‘봄맞이’ 작시로 유명한 김태오는 일제 식민치 치하 아이들의 동심을 구현한 대표 문인이다. ‘고독과 커피의 시인’ 다형 김현승은 광주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부친 김창국 목사를 따라 광주에 정착해 양림동의 언덕과 무등산을 바라보며 시심을 키웠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녹두장군’의 고(故) 송기숙을 비롯해 ‘징소리’의 문순태, 조선대 문창과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이승우 작가 등도 광주를 기반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던 광주가 낳은 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 작가 한강의 부친이자 장흥이 낳은 작가 한승원도 젊은 시절 광주에서 국어교사를 하며 소설을 썼다. 오늘의 한강이 있기까지 아버지 한승원의 문학적 영향력, 특히 작가적 성실성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부전여전으로 회자될 만한 장인정신의 표상이다.
현재 5·18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는 특별전 ‘소년이 온다’(4월 29일~10월 19일)가 진행되고 있다.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해 열리고 있는 특별전은 80년 광주의 5월과 오늘 광주에 이르게 되는 소년을 모티브로 한 전시다. 모두 6개의 장, 1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전시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오늘 우리의 광주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12월 7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며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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