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흔든 스테이블코인, 국내서도 돌풍[전예진의 마켓 인사이트]

2025. 6. 30. 08:1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대감에 전자결제기업 주가 고공행진
"디지털 금융 인프라 전환점"...금융판 '게임 체인저' 될지 관심
사진=한국경제신문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증시를 뒤흔들고 있다. 새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카카오페이, 다날, NHN, KG이니시스 등은 6월 줄줄이 신고가를 경신했다. 디지털 자산은 시장 선점 효과가 커 전자결제시스템 관련 밸류체인을 보유한 기업들이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됐다. 증권가에선 스테이블코인 도입 초기엔 발행과 결제 기업에 이목이 쏠리고 점차 유통, 보관, 보안 특화 기업으로 시장의 관심이 이동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발 스테이블코인 훈풍, 한국 상륙

스테이블코인이란 기존 화폐에 고정 가치로 블록체인에서 발행되는 디지털 자산을 말한다. 그동안 주로 달러화의 시세를 추종하는 암호화폐를 뜻했다. 테더가 발행한 USDT와 서클이 발행한 USDC가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이다. 이름에 ‘코인’이 들어가 있지만 다른 암호화폐와 성격이 다른 자산으로 분류된다. 투자 대상도 아니다. 달러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매수하는 것은 곧 달러를 매수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입법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6월 17일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GENIUS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하원에도 유사한 규제인 STABLE 법안이 지난 5월 발의된 상태다. 두 법안은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동일한 핵심 조항을 담고 있다. 코인 발행과 동일한 가치의 준비금을 현금이나 단기채로 보유해야 한다는 의무와 고객 자산 분리 보관 의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 청구권 우선 보장 등이다.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업계는 연내 시행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의 주도권을 미국이 갖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증시도 들썩였다. 지난 6월 5일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업 중 최초로 상장한 서클 인터넷(CRCL US)은 상장 후 2주 만에 주가가 675% 급등했다. 미국 상장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지난 5월 S&P500 지수에 편입된 이후 48% 상승했다.

국내에선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원화 가치를 추종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 논의가 진행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이 증권시장의 주요 테마로 부상했다. 민병덕 의원이 6월 11일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발의한 것이 불씨가 됐다.

그동안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이창용 한은 총재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줬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6월 6일 이 대통령이 김용범 정책실장을 임명한 것을 두고 디지털 자산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기획재정부 1차관 출신인 김 실장은 가상자산 벤처캐피털(VC) 해시드 산하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이사를 지낸 경력이 있다.



 

 ◆카카오페이 주가 330% 폭등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내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카카오페이다. 지난 4월 2만6350원까지 떨어졌던 카카오페이는 6월 25일 장중 11만4000원을 찍었다. 약 석 달 만에 주가가 4배 이상 올랐다. 주가가 급등하자 한국거래소는 24일 카카오페이를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하고 매매거래를 정지했다. 그러나 상승세를 막을 수 없었다.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은 13조원을 넘어섰다.

선불충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카카오페이는 올 1분기 기준 약 5919억원의 선불전자지급수단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페이(1576억원), 토스(1375억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담보 자산을 보유한 만큼 운용수익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에 선불충전금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며 “카카오페이는 ‘월렛에 충전 후 송금-결제’ 구조로 스테이블코인을 가장 자연스럽게 시스템에 녹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카오 그룹사 내에서 선불충전 잔액만큼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도 2030년 예상 운용수익이 1조원을 상회한다”고 했다.

카카오페이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표권을 등록한 것도 주가를 밀어 올렸다. 카카오페이는 6월 17일 상표권 ‘KRWKP’, ‘KPKRW’ 등 18건을 특허청에 출원했다. 원화를 뜻하는 ‘KRW’에 카카오페이를 상징하는 ‘K’, ‘P’ 등의 문자를 조합한 것이다. 카카오페이 측은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업계는 카카오페이의 스테이블코인 사업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될 경우 카카오, 토스, 네이버 등 대형 결제 플랫폼을 갖춘 핀테크 업체들이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다.

증권사들도 카카오페이의 목표주가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NH투자증권은 카카오페이의 목표주가를 기존 3만8000원에서 13만원으로 올렸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페이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능성에 대비해 발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며 “카카오그룹 내 메신저, 은행, 증권 플랫폼 등을 보유한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시스템 지각 변동 예고…최종 승자는

전자결제 기업들도 스테이블코인 훈풍에 합류했다. 지난 4월 주가가 2420원까지 내려갔던 다날은 6월 들어 7250원까지 치솟았다. 국내 3위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인 KG이니시스도 4월 주가가 7970원까지 내려갔다가 6월 1만2650원까지 올랐다. 두 회사 모두 스테이블코인이 신규 결제 수단으로 추가되면 소비자와 가맹점에 결제망을 제공해 양측에서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수록 수익이 확대되는 구조다.

다날은 오프라인 가맹점에 구비된 포스 단말기에서 가상자산 결제가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가상자산 연계 결제 관련 특허 출원을 마쳤다. 이 회사는 과거 ‘페이코인’을 발행하고 국내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으나 가상자산사업자 등록 등 금융당국의 규제로 사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 그러다 올해 2월부터 원화거래소인 ‘코빗’과 손잡고 결제 서비스를 재개했다. 사용자가 페이코인 앱에서 동의하면 코빗에서 가상자산을 매도해 원화를 출금하는 서비스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페이코인 등 다양한 가상자산을 지원하고 있다.

KG이니시스도 2022년 자회사 메타핀컴퍼니를 통해 가상자산 결제 시장에 진출을 시도했다가 금융당국의 규제로 사업을 접었다. 그러다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 움직임이 일자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 서비스 개발에 나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국내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준비자산인 한국 국채 수요가 증가하고 밸류에이션 상승(실적 대비 주가 수준)으로 이어져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준비금 담보를 위한 단기채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BIS에 따르면 2024년 연간 미국 단기채 매수 주체 1위는 미국 MMF, 2위는 중국, 3위가 스테이블코인이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권 진입으로 금융 시스템 산업 지각 변동이 나타나는 가운데 어떤 주체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아직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이미 산업을 선점하는 코인 기업과 뺏기지 않으려는 은행 등 전통 금융 기업, 새 기회를 보고 신규 진입하는 비은행 기업 등 여러 주체들의 경쟁 구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