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박스쿨 사무실, 섬뜩한 문건들 [한겨레 프리즘]

방준호 기자 2025. 6. 3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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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리박스쿨’ 사무실 문이 닫혀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방준호 | 이슈팀장

“이게 다 뭐야?” 회의실 책상과 의자, 바닥 곳곳에 문서 더미와 각종 행사 팸플릿, 펼침막이 널브러져 있었다. “리박스쿨 사무실에 있던 여러 단체 것들을 박찬희 기자가 구해 왔다”고 김가윤 기자가 문건 사이를 겅중겅중 넘어 다니며 전했다.

들춰 본 문건들은 2017년 이후 ‘우파’의 나아갈 길에 대한 다짐, 구체적인 전략, 실행의 흔적 따위를 담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잠깐 웃었다.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진 말들, 철 지난 구호의 촌스러움, 그런데도 사뭇 진지한 결의가 한데 뭉쳐 엉뚱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웃음은 지속될 수 없었다. 문건이, 현실이었다. 우리는 그들 문건에 빽빽이 적힌 말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녔고 어쩌면 여전히 미치고 있는, 12·3 내란사태 이후의 시간을 겪고 있다. 문건 속 말들을 진지하게 대면해야 했다. 이게 다 무엇인가.

지난 1월 한겨레 프리즘에 적은 글(한겨레 1월13일치 26면)에서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에 과격하게 저항했던 ‘차벽 너머’의 사람들을 상기했다. 문건은 그날 이후 그들의 생각과 활동을 담고 있다. 이곳저곳 산만하게 부려져 있지만, 핵심은 상통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온건했다.’ ‘저들이 매체와 정부를 점령했다.’ 전자는 소위 아스팔트 우파 단체들의 결합과 폭력성으로, 후자는 댓글 조작과 제도권 진입 등으로 구체화했다.

전략은 실행됐다. 2020년 광복절 집회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주도로 리박스쿨 등도 참여한 청와대 ‘공격’이 시도됐다. ‘기사 좌표 찍기, 조직적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는 심심찮게 발각됐고 반복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모욕, 참사 피해자에 대한 조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수요시위, 참사 유가족 농성, 퀴어문화축제 현장의 일부가 됐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친일·독재 미화와 편향된 젠더 인식으로 논란을 겪었고, 4월3일·5월18일·8월15일이면 국가폭력과 그에 대한 시민 항거를 ‘날조’라고 부르짖는 낯선 이름의(대개 자유, 구국, 안보 등의 이름을 붙인) 단체 수십개가 등장했다.

다만 이 모든 건 이전까지 나에게 ‘사건’ 혹은 ‘기행’일 따름이었다. 한 시점 독특한 소수의 일탈로 여겼다. 대면할 용기가 없었던 탓이다. 차마 공화국의 한 시민인 그들의 존재를 대놓고 ‘배제’할 수 없었다. 물론 품어 안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건으로서 그들의 과격함과 폭력성은 경계하되, 합리적 논쟁의 가능성은 놓지 않으려 했다. 그사이 그들의 자리는 일선 늘봄학교 강사부터 정부 자문위원, 정치권 일부로까지 번져가며 무럭무럭 넓어졌다. 마침내 계엄 사태와 그 여파를 지속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과격한 행태에 이르렀다. 문건이, 현실이 됐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 문건을 곱씹으며 단호함을 결심했다. 그것들은 사실 왜곡과 반상식적인 주장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만나온 구체적인 존재를 말살하고 그들의 고통을 부정하고 있었다.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문건에 적힌 ‘짐승급’ ‘악귀급’ 따위의 시민 구분, 4·3의 희생자를 ‘가짜 희생자’로 적은 기자회견문, 아이들에게 ‘동성애 반대’를 마스크에 적게 하는 아스팔트 우파 단체의 활동 면면에는 다른 생각에 대한 비판을 넘어 한 존재를 지우려는 섬뜩한 살의가 서려 있었다. 애초 국가폭력의 희생자라는 것, 성소수자라는 것이 어찌해볼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존재다.

‘반국가세력’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그들에 대한 ‘처단’을 계획한 거로 추정되는 한 정부의 시절이 비극적으로 마무리됐다. 비극으로부터 깨달아야 할 숱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최대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가장 너그러운 민주공화국에서조차 용인할 수 없는 선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뒤늦게 생각했다. 의견이 다른 이들과는 논쟁할 수 있다.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이들과는 대화할 수 없다.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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