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산불 발생 100일] 빚내서 농사 다시 시작…“촘촘한 특별법으로 생업 잇게 도와야”

유건연 기자 2025. 6.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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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괴물산불’ 발생 100일 현장]
사라진 집 생각하면 가슴 무너져
전소 보상금으론 집짓기 역부족
농기계 대부분 피해신고 제외
세입자·임업인 지원 사각지대
장마철 산사태 걱정 ‘불안 고조’
“세심한 지원체계 마련 절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평지마을에 조성한 산불 피해 임시 주거시설 단지에서 어르신 두분이 보행보조기를 끌고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발걸음이 무거워보인다.

“비좁고 불편하지만 어에니껴(어쩌겠어요), 그래도 살아야지.”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영남권을 덮쳤던 ‘괴물 산불’이 6월28일로 발생 100일을 지났다. 사투 끝에 불이 꺼지고 일상을 되찾았지만 피해 복구를 위한 주민들의 몸부림은 이제 시작이다.

집이 완전히 불탄 주민들은 짧게는 한달에서 두달 넘게 지냈던 임시대피소 생활을 정리하고 임시 주거시설로 속속 입주했다. 경북 안동시와 의성군은 임시주택들이 들어선 주거시설 단지를 마련했고, 영덕군은 피해주민이 원할 경우 임시주택을 기존 집터에 설치해준다. 산청군은 체험객용 숙박시설로 이용되던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별관을 이재민에게 제공했다.

임시주택에서 한달 남짓 생활하고 있는 추문식씨(70·안동시 일직면 원리)는 “29㎡(9평) 정도라 좁지만 불편해도 두 다리 뻗고 편하게 누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보니 이재민들의 무력감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에 탄 집 잔존물은 대부분 치웠지만, 토지 측량에서부터 설계·기초공사·본공사 등 갈 길이 먼 상태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 머물고 있는 정종대(81)·강정순씨(75) 부부는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하면 막막하지 않겠냐”며 “여기 시설은 좋지만 사라진 집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건축비도 큰 걱정거리다. 정씨의 경우 주택 복구비로 8700만원을 지원받게 됐지만 집을 새로 짓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도와 군이 신경을 많이 써주고 있어서 고맙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면서 “정부가 무이자 자금이라도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21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로 정종대, 강정순씨 부부의 집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정씨 부부가 살던 집터의 모습.

추씨도 “2년 후엔 임시주택에서 나가야 하는데 주택 전소 보상금으로 집을 짓기엔 턱없이 부족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비가 잦은 여름이 시작돼 산사태 위험이 커진 것도 주민들의 불안을 키운다. 산불로 삼림 대부분이 불타버려 빗물을 저장하거나 흙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불 피해지역인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에서는 5월말 집중호우로 주택이 침수됐고, 안동시 길안면에서는 불탄 산에서 토사가 흐르고 낙석이 도로로 굴러떨어져 주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주민들은 “죽은 나무들을 빨리 제거해 마을로 떠내려오는 것을 막고, 산의 물길과 마을 배수로도 잘 점검해서 최대한 빗물이 넘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먹고살 걱정도 크다. 피해주민 대부분이 농장부터 농기계까지 불타 생업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보상만으로는 피해 복구가 어려워 농사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가 하면 당장 수입원이 없어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주택과 사과농장 1만6528㎡(5000평), 농기계 10여대, 저온창고를 비롯해 송이산 18㏊(5만5000평)가 불탄 유기수씨(75·영덕군 지품면 수암리)는 “복합영농 농가와 대농들 피해가 큰데 보상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이 나이에 다시 빚을 내 집 짓고 새 농기계를 장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경북 청송산불 피해보상 대책위원회 사무실 참문에 붙어 있는 피해주민들의 요구사항.

이에 경북에서는 지역별로 산불 피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산불피해 특별법’의 신속한 제정과 피해주민의 일상 회복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왕준 청송산불 피해보상 대책위원장은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사회적 재난 지원 대상과 기준이 엉성하다보니 농촌주택 세입자나 임업인, 중소상공인 등 보상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면서 “피해 신고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이 일상 회복을 꿈꿀 수 있도록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기회에 갈수록 대형화하고 빈발하는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과 보상을 좀더 촘촘하고 정밀하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대형 산불로 농사 기반을 잃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각종 임산물과 특용작물, 대부분의 농기계가 피해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정확한 피해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피해 예방부터 보상과 복구 지원 체계를 보다 세심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 보상과 지원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주민과 농민의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고 보살펴주려는 국가의 역할과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 영남 산불 피해 현황은

3월21일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경북 안동·의성·영덕·청송·영양, 울산 울주 등을 덮친 산불은 ‘괴물 산불’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사상 최악의 피해를 냈다. 27명이 사망하고 10만4000㏊ 산림이 소실됐다. 농작물 1952㏊, 가축 2만2000마리, 과수 재배시설 514㏊, 비닐하우스 39㏊, 축사 8㏊, 농기계 1만7158대 등 농업분야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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