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참사 미수습자 기릴 노을공원 표지석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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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 30일 새벽 3시 삼풍백화점 지하 2층 비상계단 앞.
사고 직후의 참혹한 장면부터 잔해 더미 속 신음 소리,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와 우비 속으로 흐르는 땀 줄기의 끈적한 느낌, 무언가 썩는 악취와 석면 분진이 뒤섞인 현장의 냄새. 오감으로 각인된 참사의 기억은 지난 30년간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머물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삼풍 참사 30주기를 맞아 미수습자 유가족들이 노을공원에 표지석을 세우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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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유골도 함께 묻혀
표지석 건립 서울시가 나서야


1995년 6월 30일 새벽 3시 삼풍백화점 지하 2층 비상계단 앞. 구조대와 자원봉사자, 기자 등 30~40명이 숨죽인 채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4시간째, 소방관들은 엘리베이터의 철제 문짝을 뜯어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건물 붕괴와 추락의 충격으로 찌그러진 엘리베이터 속에서 남성은 몸이 거꾸로 뒤집힌 채 짓눌려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상체가 드러날 정도의 탈출구를 겨우 확보했을 때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온몸이 땀 범벅인 채로 사람들은 또 다른 생존 신호를 찾아 흩어졌다.
입사 3개월 차 수습기자에게 삼풍 참사는 평생 삭제 불가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고 직후의 참혹한 장면부터 잔해 더미 속 신음 소리,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와 우비 속으로 흐르는 땀 줄기의 끈적한 느낌, 무언가 썩는 악취와 석면 분진이 뒤섞인 현장의 냄새…. 오감으로 각인된 참사의 기억은 지난 30년간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머물며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제3자의 그 어떤 고통스러운 기억이 유족들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까.
지난 27일 삼풍참사위령탑을 찾아갔다. 30년 전의 꿉꿉한 공기가 목덜미에 얹혔다. 희생자를 기리고 남은 자를 위로해줄 위령탑은 참사 현장과 동떨어진 양재시민의숲에 외롭게 서 있다. 참사의 아픔을 되풀이 말자는 비문 속 다짐도 희미해져 있었다. 늘 그렇듯 참사의 수습이 유족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결과다. 책임자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쳤고 사고 현장에 위령탑을 세워달라는 요청도 주민 반대와 보상금 마련 명목에 가로막혔다. 그 자리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고 수습 당시 유족들을 분통 터지게 한 건 마구잡이식 잔해 제거 작업이었다. 서울시대책본부는 붕괴 보름 만에 굴착기를 투입해 본격적인 잔해 제거에 나섰는데, 이 때 실종자 유골 상당수가 잔해물과 함께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에 버려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서울시를 원망할 틈도 없이 맨손으로 난지도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 달 만에 140여 점의 유골과 유류품 수천 점을 찾아냈지만 30명의 실종자가 끝내 ‘미수습자’로 남았다. “묻었으니 거기가 무덤”이라는 유족의 말처럼 난지도는 그렇게 미수습자들의 무덤이 됐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매립지에 1.5m 두께의 흙이 덮이면서 노을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오늘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만 한 공원 어딘가에서 유족들은 허공을 향해 술을 올린다.
우리 사회는 참사를 기억하자면서도 추모 공간은 혐오시설 취급하며 변두리로 밀어내 왔다. 발길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위령비가 들어섰고 추모 시설에 ‘추모’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1999년 발생한 화성 씨랜드 참사의 희생자 추모비 역시 사고 현장에서 60㎞나 떨어진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 세워져 논란을 겪었다. 다행히 최근 사고 현장 인근에 추모 공간이 설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6년 만에 참사의 아픔을 현장에서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풍 참사 30주기를 맞아 미수습자 유가족들이 노을공원에 표지석을 세우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30년 전 실종자들의 유해를 건물 잔해물과 함께 쓰레기매립지에 묻은 원죄가 있다. 이제라도 표지석 하나 세워 묻힌 자들을 기리고자 하는 유족들의 바람에 자진해서 응답해야 한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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