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나눔에 대한 유연한 규제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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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와 '나눔'은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진화하지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역할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사회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정부나 시장을 넘어선 제3섹터, 즉 비영리단체나 공익법인의 중요성이 커진다.
실제로 선진국 공익법인들은 전통적 자선 활동을 넘어 과학기술, 환경, 사회혁신 등 국가와 시장이 해결 못한 과제에 적극적이다.
2023년 말 기준 1만2,584개의 공익법인이 등록되어 있어 규제는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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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와 '나눔'은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진화하지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역할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사회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정부나 시장을 넘어선 제3섹터, 즉 비영리단체나 공익법인의 중요성이 커진다. 선진국일수록 이들 역할은 고도화되어 사회 변화를 이끈다.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성을 인식해 온 나는 제3섹터의 활성화 정도가 선진국 판단의 중요한 질적 기준이라고 확신한다. 실제로 선진국 공익법인들은 전통적 자선 활동을 넘어 과학기술, 환경, 사회혁신 등 국가와 시장이 해결 못한 과제에 적극적이다.
국내 사정은 조금 다르다. 국내 공익법인들은 기존 운영과 사업 수행조차 위태로운 상황이다. 공익법인 운영의 핵심은 재원 확보이며, 대표적 방법은 '출연'이다. 출연 재산을 직접 사용하거나 운용 수익으로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목적사업을 수행한다. 정부는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지만, 과거 일부 법인의 부정 운영 사례 때문에 엄격한 의무와 규제를 법제화하고 사후 관리를 강화했다. 2023년 말 기준 1만2,584개의 공익법인이 등록되어 있어 규제는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일부 일탈을 막기 위한 제도가 대다수 투명하고 성실한 법인들에게 과도한 규제가 되어 부담과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이는 신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특히 '출연재산 의무 사용 규정'은 현장에서 끊임없이 개선 요구가 제기된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법인은 사업 재원(기본재산, 보통재산) 관리에 여러 규제를 받는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출연 재산에 대해 3년 내 사용, 자산 규모 일정 비율 이상 의무 사용 등 엄격한 규제를 부여한다. 이를 못 지키면 가산세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복지사업법은 기본 재산 사용을 제한하고 처분·변경 시 주무관청 허가를 받도록 한다. 한쪽은 쓰라고 하고, 다른 쪽은 못 쓰게 하는 상충되는 규제 속에서 대다수 공익법인은 의무 이행 자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좋은 뜻으로 설립된 공익법인들은 대부분 목적 사업을 성실히 수행하고 운영비 최소화 원칙으로 수입 대부분을 직접 사업비로 지출한다. 사실상 사용 가능한 재원을 100% 공익 목적에 쓰고 있음에도, 형식적 기준 미충족으로 가산세가 부과되며, 결국 목적 사업 재원이 가산세 납부에 사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 법인은 기본 재산을 처분하거나 별도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제도적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공익 목적 사업 지출은 축소되고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는 기업과 자산가들의 출연 의지를 꺾고 기부 문화 확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부 공익법인의 불투명한 운영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가 본래 취지를 넘어 공익 활동을 가로막고 기부와 나눔 문화를 위축시킨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와 다르지 않다.
부의 자연스러운 사회 환원은 경제 발전, 사회 성숙과 함께 필요한 선순환의 한 축이다. 공익 활동 활성화는 장기간 지속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적 균형이다. 투명성과 책임을 담보하되, 현장 운영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규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부와 나눔이 살아 숨 쉬는 사회, 진정한 '선진국형' 시민 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박순호 세정나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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