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절대 권력의 저주, 토씨의 정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5. 6. 2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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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통령은 허수아비를 앉혀 놓아도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 모두가 그의 심기를 살펴 ‘○심’ 경쟁이 일어나고, 허수아비는 자신이 초인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한다. 허수아비를 데려온 사람들은 허수아비를 숭배하고, 허수아비는 그들로 공직을 채운다. ‘○심’이라는 단어에 인플레이션이 생겨 ‘진○’과 ‘찐○’이 생겨난다. 허수아비는 아니었지만 당내 기반이 없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국 국민을 ‘계몽’하려고까지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내 기반이 탄탄하고 당선 전에 이미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구축했다는 점에서 허수아비나 윤 전 대통령과는 딴판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거기에 있다. 지난 정권 초기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윤심’을 다투며 ‘진윤’과 ‘찐윤’을 구별했듯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명심’ 경쟁이 치열하다. ‘진명’을 건너뛰어 ‘찐명’이 회자된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에 이미 당권을 장악했다. 이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들이 당을 떠나 당내에는 이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제1야당인데,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여력조차 없다. 내란 정당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성찰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영국 역사가이자 정치가였던 액턴 경은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의 저주다. 준비된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권력은 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는 이 저주를 어떻게 피하느냐에 달렸다. 이 대통령 스스로 자제하고 현명한 통치력을 발휘해 이 저주를 피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조정과 통합의 정치를 주장하고 당선 직후 첫 국무회의에서는 국민의 대리인임을 강조했다. 국민에게는 대리인으로서 올바른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리더로서 국민 위임을 받아 조정과 통합의 정치를 이룩한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최고 공직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갖췄다.

하지만 액턴 경의 격언은 권력자 스스로는 절대 권력의 저주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도적으로 권력 분립을 보장하거나 현실적으로 견제 세력이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권력 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하므로 제도적 요건은 갖춰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실 정치에서 견제 세력이 존재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

다행히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먼저 견제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과반을 획득해 당선되었다면, 여당이 의회 다수를 장악하고 제1야당이 무력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그야말로 거칠 게 없을 것이다. 과반에 약간 못 미치는 지지표를 통해 국민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신뢰와 견제를 동시에 표현했다. 다른 한편으로 탄핵 정권의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에 40% 넘는 지지표를 줘 견제 역할을 맡기고자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이것은 오히려 계륵이 된 듯하다. 반성과 성찰을 통해 견제 세력으로 빠르게 거듭날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언론과 시민사회다. 정당이 견제 역할을 상실한다면 언론과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당 민주주의가 발전한 서유럽에서 언론과 시민사회는 정당이 약해질 때 정당 역할까지 수행함으로써 ‘제2의 정당’으로 불린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정당보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 소리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다.

절대 권력의 제도적 온상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우리는 ‘계엄’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경험했다. 그 계엄에 대한 탄핵을 통해 태어난 새 정부는 제도적 근원을 제거할 소임을 갖는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권력의 저주가 시작되기 전에 권력 구조를 비롯한 제도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시민사회가 이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정부와 여당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토씨 같은 정치인을 원한다. 토씨는 체언·부사 혹은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의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 뜻을 도와주는 품사를 말한다. 중요한 체언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토씨는 단지 체언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주어로도 만들고 목적어로도 만들어 그 격을 결정하고, 체언과 체언을 연결한다. 그러면서도 조사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대리와 통합의 정치가 토씨의 정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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