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강릉 여주, 그리고 부산

이진규 기자 2025. 6. 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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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맷길 갈 길 아직 멀어…민간 주도, 자원봉사자
市 재정·행정지원 필수…여행자센터도 구축해야

보름쯤 전인 지난 13~16일 강원도 강릉에서는 ‘2025 글로벌 강릉 트레일 페스타’가 열렸다. 강릉시가 주최, 한국관광공사가 후원하고 ㈔강릉바우길이 주관했다. 이름처럼 제주올레와 지리산둘레길, 내포문화숲길, 갈맷길 등을 관리·운영하는 국내 대표적인 트레일 단체가 총출동한 것은 물론 일본과 대만 몽골 부탄 등 4개국 트레일 단체도 참가해 1200여 명의 일반 참가자들과 함께 강원도의 대표적인 트레일인 강릉바우길 5코스와 6코스 일부를 연결한 13.2㎞를 걸었다. 강릉바우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강릉의 명소를 거쳐 간다. 경포해변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남항진까지 5.5㎞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해송 숲길, 전국적 명소로 떠오른 안목항 일대 커피 거리를 지나 중앙시장을 바라보는 남대천 변 월화정까지 축제 코스가 이어졌다.

강릉의 걷기 축제에 앞서 지난 5월 초에는 경기도 여주에서 ‘2025 여강길 걷기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에도 ㈔한국걷는길연합 소속의 국내 트레일 단체는 물론 대만과 키르기스스탄 트레일 단체가 참여해 트레일 운영의 경험을 주고받는 포럼에 이어 걷기 축제가 진행됐다. 걷기 축제에는 한때 장대비가 쏟아지는 중에도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세종대왕릉역과 여주여행자센터를 잇는 14㎞의 5일장터길을 걸었다. 여강길 역시 여주의 대표적인 명소를 빼놓지 않는다. 올해 축제가 열린 4코스 5일장터길을 걸으면 최근 개장한 남한강 출렁다리,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오일장, 우암 송시열을 기리는 대로사, 보물로 지정된 창리 삼층석탑과 하리 삼층석탑 등을 지난다. 남한강의 여주 구간을 일컫는 여강에서 이름을 따온 여강길은 총 140㎞, 14개 코스가 운영된다.

강릉바우길, 여주 여강길은 부산을 대표하는 트레일인 갈맷길과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09년생 동갑내기라는 것이다. 강릉바우길은 2009년 지역의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길을 열었다. 애초 강릉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의 산과 바다, 호수의 옛길과 새길을 따라 걷는 총연장 150㎞의 트레일로 조성됐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여강길은 2004년 생명평화 남한강 도보순례에서 비롯해 2009년 문화생태탐방로로 여강길이 지정된 이후 차츰 코스를 늘려 2021년 현재의 14코스를 갖췄다. 갈맷길은 2009년부터 조성한 그린웨이에 시민 공모로 갈맷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몇 차례 재정비를 거쳐 2023년 1월부터 현재의 9개 코스 23개 구간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갈맷길이 강릉바우길, 여강길과 비슷한 점은 같은 시기에 이름을 얻었다는 그뿐이다. 16년이 흐른 지금 갈맷길은 다른 두 길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트레일의 관리·운영 체제 차이다. 강릉바우길과 여강길은 민간이 설립한 비영리법인이 공공기관과 협력해 트레일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민간 주도 공공 지원’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갈맷길 운영과 관리에 있어서 지역의 민간 조직이 목표로 해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이들 조직은 각각 지역의 여행자센터를 운영하며 인건비나 운영비를 공공으로부터 지원받는다. 특히 여강길의 경우 여주시가 68억 원을 들여 신륵사 지구의 건물을 매입해 여행자센터로 리모델링한 뒤 ㈔여강길이 관리·운영을 맡고 있다.

이러한 센터들은 단순한 길 안내를 넘어서 지역과 걷는 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도보여행자들이 트레일에서 겪는 경험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 더 많은 구간을 걷고 더 천천히, 더 오래 걷게 한다. 지역 체류시간을 늘리는 일은 인구 소멸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생활인구 증대의 방안이 된다. 이런 센터는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지역민이 함께하는 거점 역할도 한다. 강릉바우길이나 여강길을 담당하는 길 단체들은 오랜 기간 트레일을 관리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지역 트레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지역에 뿌리내리며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끈다. 앞서 열린 걷기 축제들에서 10㎞가 넘는 구간 곳곳에서 안내를 맡은 이들은 지역 트레일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트레일이 지역에 뿌리내리려면 지역 트레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길 단체, 적극적인 자원봉사자, 이를 행정·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공공 영역의 역할이 모두 균형 잡혀야 한다. 트레일 전담단체도, 여행자센터도, 적극적인 자원봉사자도 모두 갈맷길에는 부러움이자, 배워야 할 대상이다. 여주시나 강릉시 모두 인구가 많고 재정이 넉넉해서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트레일 운영이 활기를 띠는 건 아니다. 트레일의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시민 단체 지자체가 ‘함께 길을 걷기’ 때문이다. 강릉시는 인구 20만 명, 여주시는 11만 명의 작은 도시다. 부산 인구는 325만 명이다. 갈맷길이 갈 길은 아직 멀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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